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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스라엘은 타협을 모를까?
2 천 년 동안 기독교세계에서 유대인들은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들은 많은 학살을 당했다. 나치만의 만행이 아니다. 전 유럽이 거기에 동조했다. 폴란드의 유대인 지도자 바이스만텔이 로마교황청에 호소했다. 어린아이들만이라도 구해달라고. 그러나 답은 “이 세상에 무고한 유대인 어린아이의 피라는 것은 없다. 모든 유대인의 피는 죄악되다. 당신들은 죽어야 한다.”고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들은 아주 심각한 질문을 했다.
“왜 우리가 이토록 극심한 고통을 당해야 할까?” 그리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우리의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 준다”
그래서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것이 시오니즘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만들었다. 하나님을 버리고 국가를 택한 것이다. 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옛날 구약성경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워달라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신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시오니즘을 무신론이라고 규정했다.
유대인들,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켜온 것이 경이롭다. 그들의 아픔이 큰 만큼 남의 아픔도 헤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2000년 동안 살고 있던 이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냈다. 가장 고통과 고난을 받으며 살아왔던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대책 없이 쫓겨난 팔레스틴 난민들, 어찌하여 역사는 고난받은 이들이 또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이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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