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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열왕기상 15:33~16:14
로마에서 제정을 시작한 옥타비아누스(BC 63~AD 14)는 모든 길을 직선화하여야 한다는 신념 아래 로마 공병대는 8만 3천 킬로미터의 길을 닦아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게 하였습니다. 그후 200년 동안 ‘팍스 로마나’의 시대정신을 이으며 평화를 이루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만 길 하나가 세상에 평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길의 중요성에는 공감합니다. 아득한 고대의 동양과 서양을 잇던 실크로드가 있어 정치 · 경제 · 문화 · 종교 등 인류 문명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아스팔트로 만든 신작로도 있고 구불구불 옛길도 있습니다. 속도 무제한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도 있고 빨리 달려서는 안 되는 속도제한의 학교 앞길도 있습니다. 등산로도 있고 농로도 있고 임도도 있습니다. 하늘에는 하늘길이 있고 바다에는 바닷길이 있습니다. 지하차도도 있고 아슬아슬 무서운 공중다리 길도 있습니다. 빨리빨리 지름길도 있고 천천히 걷는 둘레길도 있고 비좁은 골목길도 있습니다. 둘러 가는 길도 있고, 질러가는 길도 있습니다.
길은 소통입니다. 길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지난 7일 하마스의 공습으로 촉발된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반격이 이루어진 가자지구는 길이 꽉 막힌 곳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입니다. 본래 이 길은 이집트에서 바벨론에 이르는 해변 길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검문소가 있을 뿐입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세종시 정도의 면적인데 약 240만 명이 살고 있어 인구밀도가 세계 최고입니다. 그곳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닫힌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길은 열려야 합니다. 길을 막으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이 하마스가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존귀한 존재라면 남도 그런 시선으로 보아야 옳습니다. 길이 끊긴 곳에서는 역사도 멈칫합니다. 길이 막히면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런 곳에서 인간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살상의 표적이 되고 맙니다. 길이 막힌 곳에 소통의 역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힘으로 평화를 만들겠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힘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거짓말입니다. 힘이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곧 힘입니다.
길은 사람의 도리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길’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4:6). 유다의 아사 왕 삼 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바아사가 반역을 일으켜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 왕을 죽이고 새 왕이 되었습니다. “바아사는 왕이 되자, 여로보암 가문을 쳤는데, 숨 쉬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전멸시켰다”(15:29a) 사필귀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고 백성을 죄에 빠트린 여러보암 가문을 응징한 바아사가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고, 여로보암이 걸은 길을 그대로 걸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는 그 죄도 그대로 따라 지었다”(15:34). 그가 여로보암 가문에 대하여 응징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기대하였지만 그 역시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습니다. 인생은 참 모순 덩어리입니다.
오늘도 이 어긋난 길을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른길을 걷는 이들은 너무 소심하고 어긋난 길을 걷는 이들은 너무 용감합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정도를 걷는 이들에게 세상을 섬길 기회가 다시 주어지고 그들이 지향하는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하여 좀 더 용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지금 여로보암의 길을 걷는 자를 책망하여 주십시오. 악한 자는 용감하고 착한 이는 소심한 세상에서 어린 양이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르는 거룩한 성도의 행렬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2023. 10. 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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