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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죄
열왕기상 17:1~7
독일 출신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나치에 복무하며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 재판에 참관하면서 ‘악의 평범성’을 보았습니다. 홀로코스트 같은 악행은 악마의 얼굴을 한 악인이 자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일상이 패륜이자 악행이 되었습니다. 나치스에 복무한 아이히만은 한 여성의 자상한 남편이었고, 귀여운 자녀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독일의 집권당 나치스의 명령을 생각없이 수행한 모범 공무원이었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생각하지 않음’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오늘 이 땅에도 과거 일제강탈기에 독립군 잡는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족 반역자들을 역사의 무대에 세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반성도 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그 결과 민족 고난의 시기에 명예와 부를 축적하였고 그들의 자녀들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더러운 부와 추한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반면 독립군과 열사들, 그들의 자녀들은 정처 없이 쫓겨 다니며 가난과 위험의 벼랑 끝에 서야했습니다. 배움의 기회를 놓쳤고, 궁핍한 삶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해방은 되었지만, 조국은 그들을 호명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자리는 부역자와 그들의 자녀들이 차지하였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대 왕 가운데에 가장 악한 왕으로 폭군 이미지가 매우 강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합 시대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그의 아내 이세벨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아합도 악했지만 이세벨은 더 사악했습니다. 이세벨은 우상을 숭배뿐만 아니라 힘을 숭배하는 여자였습니다. 힘으로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 여자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 부부는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니라 부창부수(婦唱夫隨)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시대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습니다. 길르앗 디셉에 사는 예언자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냈습니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17:1)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그릿 시냇가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을 통하여 엘리야에게 빵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
영적 어둠의 시대에 포악한 왕 앞에 나선 용감한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누군가 나서야 할 때 엘리야가 나섰습니다. 자원하여 나왔는지, 하나님께 등을 떠밀려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등장 자체가 희망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합이 사람을 두려워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등장이 대단합니다. 악한 군주에게 하나님의 의를 외치며 심판을 전하는 일은 예언자의 소임입니다. 예언자의 전통을 잇는 교회는 현실에서 그 역할을 하여야 마땅합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를 비웃으며 전쟁을 부추기며 사회적 약자에게 수모를 안기는 사악한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는 죽어서 갈 천국에 혼을 빼앗겨 아글타글하는 마음으로 살아내야 할 오늘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죄, 그것이 이 시대 교회의 죄입니다. 에스파냐의 화가 고야는 ‘이성이 잠들면 않으면 괴물이 깨어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지도자의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악행을 자행하여도 모른 척하는 이 땅의 교회가 수치스럽습니다. 과연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그 일원으로 있는 종으로서 부끄럽습니다.
2023. 10. 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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