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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8:16~29
아합 왕에게 엘리야는 철천지원수였습니다. 엘리야만 아니었으면 자기 뜻과 욕망을 훨씬 더 수월하게 실현하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이 엘리야를 만났을 때 첫마디가 “그대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장본인인가?”(18:17)였습니다. 이 한마디 말에 아합의 역사를 대하는 자세와 현실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고통에 빠트린 자가 엘리야라고 확신했습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한 사람만 제거하면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문제는 엘리야에게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적반하장이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아합의 생각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교정해 줍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왕 자신과 왕의 가문입니다. 왕께서는 야훼의 계명을 버리고 바알을 받들어 섬겼습니다”(18:18). 하지만 사유의 문이 닫힌 자는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생각하는 기능이 정지된 자에게 깨달음은 언감생심,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나라가 간고한 경제 현실과 복잡한 사회 현상과 각박한 국제 질서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고전하는 이유를 지도자는 남 탓으로만 돌립니다. 사돈남말만 합니다.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를 지도자로 삼은 나라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이 매를 드는 세상,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아합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있더라도 오바댜처럼 소극적으로 활동하기만 하였다면 이스라엘의 고질병은 나아질 수 있었을까요? 정의와 평화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질 수 있을까요? 엘리야같은 쓴소리하는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희망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본문을 읽으면서도 왜 한국 보수교회는 현실에 존재하는 아합 같은 이의 무모하고 반역사적이고 몰철학적 사고와 실종된 정치 현안에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아합이 이세벨로 하여금 우상의 산당을 짓게 하고 그 선지자들을 국가 종교의 위대한 스승처럼 받들고 있는데도 왜 한 마디 쓴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거짓을 일삼고 사치를 즐기고 미신을 신봉하는 이에 대하여 침묵하는 일이 교회가 할 일입니까? 이런 경우를 보면서 이 땅의 교회가 과연 어두운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를 심각하게 의심하고 고민합니다. 물론 그 일원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부끄럽기 그지없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갈멜산에서 우상숭배자들과 한판 대결을 벌일 것을 제안하며 이스라엘 백성도 모이게 하였습니다. 모여든 백성에게 엘리야가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작정입니까? 만일 야훼가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18:21). 하지만 누구도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명분을 쫓기보다 실리를 쫓고, 확신이 없을 때 머뭇거리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도 악한 지도자가 다스리는 세상에서는 정의와 진실의 가치를 좇는 이가 드뭅니다.
주님,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이바지한 적이 없는 보수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침묵만 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양다리 걸치기에 익숙한 교회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아합과 이세벨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므로 교회를 정신 차리게 하여 주십시오.
2023. 10. 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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