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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열왕기상 19:1~21
갈멜산에서 있었던 일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이세벨에게 전해졌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실권은 이세벨에게 있는 듯합니다. 백성이 인정하는 군주와 실제 왕권을 휘두르는 이가 다른 경우를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아무런 공직도 없으면서 나랏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행위를 국정농단이라고 합니다. 이세벨이 꼭 그 격입니다. 이세벨은 즉시 사람을 엘리야에게 보내 자신의 분명한 의지를 알렸습니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19:2) 이세벨의 복수심이 극악합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우상 숭배하는 거짓 예언자 850명 앞에서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엘리야입니다. 그때는 중과부적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숫자적 우위에 전혀 눌리지 않았습니다. 악하기로 이름난 아합 왕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아합이지만 엘리야는 그 너머의 초월적 하나님의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엘리야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세벨의 엄포 한 마디에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19:3)하고 말았습니다. 어처구니없어 보입니다.
이스라엘 디셉 출신의 엘리야는 유다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세벨이 보낸 자객이 올 수 있다고 판단했던지 유다 중에서도 가장 남쪽인 브엘세바까지 갔습니다. 거기에 사환을 머물게 하고 자신은 하룻길쯤 더 갔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자 가운데에는 예레미야나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은 채 메시지만 전하다가 고난에 처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엘리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어 반역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뿐만 아니라 실행하기도 한 당사자가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씁쓸하고 낯섭니다.
그런데 유다로 망명하여 브엘세바까지 내려온 엘리야가, 그곳도 무서워서 하룻길을 더 깊이 숨어들어 로뎀나무 아래에 앉은 엘리야가 한다는 소리 역시 가관입니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19:4) 살기 위해 온 곳에서 죽여달라는 말이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자초할 요량이라면 그 먼 길을 도망할 필요가 무어란 말입니까? 아, 그렇습니다. 엘리야의 죽음 요청은 사실은 삶에 대한 집착의 표현이라고 해석합니다. 그가 죽으면 큰일납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19:10). 엘리야의 말처럼 마지막 남은 예언자가 죽으면 큰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단절됩니다. 그래서 더 살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재촉하는 죽음은 삶의 의지입니다.
강한 사람에게도 약한 면이 있습니다. 약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강한 척할 뿐입니다. 엘리야가 그렇습니다. 엘리야처럼 위로가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위로해 주셔야 합니다. 그 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서야 합니다. 먼 옛날 모세를 불러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꼭 크고 강한 바람이 아니더라도, 지진과 불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전에는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같은 능력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히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전과 다른 은혜가 부과하는 사명을 성심껏 받들겠습니다. 함께하여 주십시오.
2023. 10. 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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