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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31:2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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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
(2022.10. 9. 주일예배 설교)
성경 : 시31:23-24
제목 : 강하고 담대하라
찬송 : 290(412), 337(363), 321(351), 341(367)
시31:23-24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를 보면 평상시와 비상시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사회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지만, 비상시는 어려운 상황과 사태가 일어나서 여러 가지 일이 위기와 난관에 부닥칩니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정상시의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고, 비상시에는 비상시를 극복하기 위한 정신의 무장이 필요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비상상황에서도 슬기롭게 대처해 나아갑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용기와 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우리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했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은 시련과 위기가 닥쳐올 때, 주님 주시는 지혜와 용기와 믿음으로 시련과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은 당면한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꿈을 꾸고 꿈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합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고 어렵지만, 꿈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나중에는 꿈이 그 사람을 이끌어서 결국 꿈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인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었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결국 그 꿈이 이루어지므로,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태동하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고후4:16-18절에서‘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힘들고 고달프고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지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날로 새로워지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까지 바라볼 수 있는 꿈과 믿음과 소망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닭과 독수리는 위험 앞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폭풍이 몰려오면 닭은 몸을 날개에 묻은 채 숨을 곳을 찾지만, 독수리는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고 태풍에 몸을 싣고 유유히 날아올라 안전지대로 향합니다.
사람도 인생의 폭풍을 만날 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고통스러운 일, 억울한 일, 괴로운 일이 닥치면 몸을 숨기는 ‘닭 형 인간’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담대하게 대처하는 ‘독수리 형 인간’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항상 ‘독수리 형 인간’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일단 피하고 보자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잠시 문제에서 피할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담대하게 고통을 극복한 사람들에 의해 쓰여 졌습니다. 서양 속담에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나운 바람으로 인해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모진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며 자란 나무는 좋은 목재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나약한 닭에서 강한 독수리와 같이 고난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줄 믿습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문호‘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며,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싸움의 연속입니다.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웁니다. 더구나 우리는 모든 악과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적과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온갖 병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고, 승리하는 민족이 되어야 하고, 역사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패배자의 운명입니다. 승리는 결코 우연이나 요행의 산물이 아닙니다. 승리는 지혜와 신념의 산물이요, 도전과 인내의 산물입니다. 게으른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나약한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언제나 위기가 있습니다. 위기에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에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는 기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위기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만은 아닙니다. 위기는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해결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절망과 소망의 만남이요, 부정과 긍정의 대결이요, 죽음과 삶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위기에 패배하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절망가운데에서도 소망의 길을 열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지난날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여러 가지 위기와 고난이 닥쳐왔지만, 그때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언제나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이나 위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시련과 위기를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결심과 용기가 없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의 위기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위기를 극복한 바울사도는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고 말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의 사람도 세상에서 시련과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당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고난과 시련의 위기 속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도우심과 위로와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평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어려운 상황가운데에서도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다시 일어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엡6:13절에서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우리 앞에 닥쳐오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때로는 우리 앞에 원치 않는 장벽이 가로막힐 때가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걸어 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피할 길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 감당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절망적인 위기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 주시는 지혜로 위기를 극복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인 요셉은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욥도 다윗도 모두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이렇게 고난 속에서 믿음의 꽃을 꽃피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순경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패는 순경 속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힘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고난의 벽을 뛰어넘게 하는 삶의 원동력입니다. 성경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고난과 당당히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삶의 용기를 주시고 고난의 바다를 기쁘고 당당하게 항해하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바울사도는 고후7:4절에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사도는 어떻게 모든 환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고 하였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바울사도처럼 하나님의 기쁨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종교개혁자 칼빈(Calvin)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누릴 때 신자의 정서 안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 주시는 기쁨은 주님 안에서(빌3:1) 나타나는 믿음의 결과이며(빌1:4), 성령의 열매이고(갈5:2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보증된 영혼의 내적인 평안(요16:33)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기쁨이 가득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우리가 주님 안에서 믿음의 식구들이나 형제자매들이 함께 기뻐하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로 조심하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배하고 함께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서로 준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자기 욕심 보다는 서로의 유익을 위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B.C.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도가(道家)의 창시자이며 사상가 노자(老子)는 인간 관계론의 5가지 법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진실함이 없는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사람을 추켜세우거나 머지않아 밝혀질 사실을 감언이설(甘言利說)로 회유하면서 재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는데, 신뢰받지 못하는 거짓은 아무리 아름다워 보여도 금방 밝혀지는 것입니다.
둘째, 말 많음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말은 적은 편이 좋습니다. 말보다 성의를 보이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갖게 합니다. 그러므로 말보다 진실한 삶으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셋째, 아는 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더라도 너무 아는 체하기보다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낫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식이 있더라도 이를 남에게 나타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돈에 집착한 채 돈의 노예가 되거나, 너무 자신의 욕심만 나타내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다섯째,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과 다툰다는 것은 손해입니다. 어떠한 일에나 자기의 주장을 밀고 나가려는 사람은 이익보다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다투어서 적을 만들기 때문이다. 열사람의 친구 보다 한 사람의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인생의 윤활이자 처세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 못지않게 인간관계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신뢰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고 성도들이 함께 시련과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주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만 관철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아이에게 쏟는 관심이 아이에겐 지나친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고, 사랑하는 연인과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연인에겐 구속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상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나친 관심이나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관심, 이런 것들은 모두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관심 입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와 같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 아이들이나 상대방이 그것을 친절과 배려, 사랑으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인간관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관심은 나의 기준이나 잣대를 버리고, 우리아이들이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먼저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을 고유의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어야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조차도 자신을 존중하는지 아닌지를 100% 직감할 수 있습니다. 잘한 일에 대해 칭찬에 그치지 말고. 힘들어하고 지쳐 있을 때, 실패하고 좌절하고 실망에 빠져 있을 때, 아프고 병들었을 때, 갈등을 겪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할 때 격려해 주고,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어야합니다.
2.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주고자 하는 것을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한두 번 이해하고 배려해 주다가 참지 못해 포기하거나 관심을 꺼버리는 것은 상처만 남길 뿐입니다.
3.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좋아할 수 있고, 좋아하는 만큼 배려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이야기를 경청하므로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거나 무엇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그 사람 자체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에 30초만 소중한 사람을 지켜보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든, 그 사람을 생각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의 관심은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배려로 표현될 것이며, 그것은 감사의 마음을 넘어 더 큰 감동으로 세상에 확산될 것입니다.(하우석의 ‘뜨거운 관심’ 중에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시련과 위기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실망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어떤 고난도 어려움도 주님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이겨냄으로, 끝내는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며, 온 가족과 형제자매, 그리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이해하며, 아름답고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므로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주님 주시는 지혜로 강하고 담대하게 모든 일에 승리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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