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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16-2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16-27: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16-18: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4: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해서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고생을 했고,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다를 건너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제자들끼리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다.

 

예수님께서 가라고 해서 가다가도 풍랑을 만났고, 제자들 스스로 가다가도 풍랑을 만났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없이 가면 풍랑을 만나고, 예수님을 모시고 가면 풍랑을 안 만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늘 어려운 사건 환경을 만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늘 평안하고 조용하게 사느냐? 어떻게 보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고통을 겪는 것이 똑같다.

 

:에서 예수님께서 건너가라고 한 말씀을 따라 건너갈 때 풍랑을 만났는데, 이 때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죽겠다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쳐야 하느냐? 주님께서 바다를 건너가라고 하실 때는 풍랑이 일어날 것을 모르고 가라고 한 거겠느냐? 예수님께서 건너가라고 해서 건너갈 때는 아무리 풍랑이 일어도 바닷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만일 죽는다면 예수님이 나쁜 분이 된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는 분이 건너가라고 해놓고서 나 몰라라 할 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건너가라고 해서 이 말씀에 순종해서 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은 우리가 말씀의 이치대로 잘 믿으려고 하는데도 어려운 일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욥은 의인이라도 사건을 만났다. 그러나 가라고 할 때 그 말씀을 따라서 가면 아무리 풍랑 파도가 일어도 물에 빠져죽지 않는 것처럼 말씀대로 할 때는 신앙이 죽지 않는다는 게 보장이 되어 있다는 거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가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났는데, 그러면 제자들이 밤새 바닷가에서 예수님이 오시길 기다려야 하는 거냐, 예수님이 안 오셔도 필연적으로 건너가야 하는 거냐? 사람이 출생을 하면 필연적으로 험난한 바다를 건너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을 따라 가는 거냐, 인간 자기 주관으로 가는 거냐?’ 이게 있는 거다. 예수를 믿어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붙잡고 가는 게 있고, 명령이 없이 가는 게 있다.

 

인간은 태어났으면 출발을 하게 되어 있고, 건너편으로 가게 되어 있다. 출생을 해서 공동묘지까지 가게 되는데, 이런 와중에 예수를 믿더라도 인생길을 가면서 사건 환난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사람과, 예수님을 모시지 않고 가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 즉 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건 환경을 대처하는 게 다르다. 본문을 보니 예수님은 산으로 가셨지만 제자들이 바다를 건너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죽을 지경에 빠질 것을 아시고 바빠져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서 고통을 당한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도 아니고, 편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 것도 아니다.

 

생명과를 먹고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땅에 편만하라고 했으니 인간들이 이 말씀에 순종해서 생명과를 먹으면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땅에 편만할 수 있는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지혜가 나오게 되어 있고, 합당하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명과를 먹던 선악과를 먹던 활동을 하게 되는데, 선악과를 먹으면 죄를 짓는 쪽으로 움직이고, 생명과를 먹으면 사는 쪽으로 움직인다. 모든 사고의 발상이 그렇다. 선악과를 먹으면 이 사람에게는 세상정신이 들어 있기 때문에 하는 것마다 사망이다. 자기가 가만히 있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지는 게 아니다. 반대로 생명과의 말씀을 먹으면 지혜가 나오고, 지식이 나오고, 세상을 바로 사는 처신이 나온다. 말씀순종에서 이렇게 된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네가 땀을 흘려야 먹을 수 있다라고 했는데, 땀이 흐른다는 것은 힘을 쓰고 노력을 한다는 거다.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을 고생으로 여기지만 이 노력 속에는 건강도 들어 있고 구원도 들어 있다. 그러니까 자기의 잘못으로 저주가 왔더라도 이 저주에서 깨닫고 바로 하면 이 저주를 복으로 돌릴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사람이 먹고 마시며 편히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은 그 생각 자체가 병이 든 생각이다. 우리는 생각이 건강해야 한다.

 

19-21: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가라사대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제자들이 죽자 사자 노를 저어서 십 여리쯤 갔을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데 제자들이 분명히 예수님이신 줄을 알기는 아는데 사람이 험난한 바다 위로 걸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유령을 보는 것 같아서 떨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라고 하시니 그 때야 안심을 하고 예수님을 배로 영접을 했고, 언제 도착이 되었는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가려던 곳에 도착을 했다.

 

이게 우리에게 뭘 깨닫게 하는 걸까? 첫째로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심은 그 전에 광야에서 5천 명을 먹이신 표적이 땅에 속한, 세상에 속한 운동이 아니라 물 위의 운동, 하늘의 운동이라는 거다. 단순한 구제사업이 아니라는 거다. 두 번째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먹고 마시는 사고방식은 버리라는 뜻으로 물 위로 걸으신 거다. 세 번째는 제자들이 비록 예수님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가다가 고통의 환경에 빠졌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형편을 다 아시고 환난 가운데서 돌보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 번째는 큰 배이던 작은 배이던 관계가 없이 환경이나 장소가 어떻든 예수님을 영접만 하면 환난이 닥치더라도 이 환난이 언제 지나가 버렸는지 모르게 통과를 한다는 거다. 같이 예수를 믿고 같이 환난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은 환난 속에서 나 죽는다라고 소리를 치는가 하면 예수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은 밖에서 아무리 큰 환난이 와도 이 환난이 피해를 주지 못한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가 예수님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감옥의 고통과 두려움이 이 사도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그렇고, 다니엘의 세 친구도 예수님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칠 배나 뜨거운 불에 피해를 입지 않은 거다. 이게 우리의 실상적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예수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으면 사건이 주는 피해를 그대로 받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만나게 되는데, 이 때 자기의 마음이 어떻게 돌아가느냐? 부요에 푹 빠지거나 가난에 푹 빠지면 이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영은 아무 데도 매이지를 않는 건데 이건 자기의 생각이 자기를 붙들고 자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2-27: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짐승과 달리 영과 육의 결합체로 만들어 놨다. 영은 인간 자기의 주격이요 육은 소유격이다. 인간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심은 우리 인간은 죽음의 선을 넘어 영원한 신령천국에서의 누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고, 육신은 물질을 먹고 자라는데, 자기가 어느 양식을 자기의 참 양식으로 삼고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어느 과일을 먼저 먹었느냐? 자기의 참 과일, 혹은 참 지식이 생명과냐, 선악과냐? 어느 양식을 자기의 참 양식으로 삼고 먹고 있느냐?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본질의 진리이치를 매일 먹음으로 영인성장이 되고 영능의 실력이 된다.

 

영에 속한 것은 신령천국에 들어간다. 우리가 물질을 먹는 것은 건강한 몸을 영을 위한 의의 병기로 쓰기 위해서다. 육신의 양식을 영양가가 없는 것을 먹으면 배만 나오고 힘을 못 쓰듯이 영의 양식도 마찬가지다. 진리말씀을 받으면서 이치를 잘 터득하면 영인성장 면에 상당한 힘을 발휘하게 되고, 영적인 기능과 지능이 발달이 되어나간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예수 믿어 부자 되고, 병 낫고하는 눈에 보이는 쪽으로 치우쳐 있으니 어떻게 영의 사람이 자라겠느냐? 절대로 못 자란다.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도 모른 채 입만 열면 자기의 세상적인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고 있으니 신앙이 못 자란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을 해서 광야를 거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것은 우리 기독자의 삶을 말하는 건데, 만일 부모는 옳은 신앙의 진리 길, 생명 길, 좁은 길로 가는데 자녀가 이 길로 안 가려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럴 경우에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이 내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한 집안 식구라도 원수가 된다. 의사충돌이요, 마찰이요, 대립이요, 의사단일이 안 된다. 이런 면을 가슴 아프게 느끼지 못하면 은혜를 못 받는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세상을 소원하고 살았지만 믿은 후에는 영원한 존귀영광과 영능의 실력을 닦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자기의 영원한 영광성은 임시성인 이 세상에 살면서 닦는 건데, 닦는 것만큼 자기의 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바로 가게 된다. 이러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배우고 쌓은 실력만큼 써먹으면서 뿌리게 된다.

 

썩는 양식을 위해 사는 것은 세상에 속한 소원 목적으로 사는 것이니 이건 다 썩는 일이다. 구약의 애굽백성들은 바로 왕의 통치 밑에 살았기 때문에 날마다 먹고 마시고 살아도 전부는 애굽의 건설과 애굽의 존귀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썩는 일이 되는 거다. 사람들이 아무리 과학적 문화적으로 찬란한 문명을 이뤘어도 하나님이 없이 된 것은 전부가 불타고, 썩고, 진동되고, 요동되고, 열 가지 심판에 해당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면서 홍해를 건너고, 시내산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광야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먹었다.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 하늘로부터 만나가 내려졌다. 이렇게 계속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니 애굽은 점점 멀어지고 애굽의 소원성은 점점 빠져나가면서 광야에서 이방인들과 싸워서 이기니 점점 실력이 커진다. 영적으로 말을 하면 시내산의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인격화 되고 영능의 실력이 점점 올라간다. 예수 믿는 속에는 이런 게 들어 있는 것이니 멍청하게 믿지 말아라.

 

우리를 영육 결합체로 만들어 놓으심은 우리의 속사람의 영인성장을 위해서다. 그럼에도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육신이 사는 것을 염려해서 모세를 반역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을 한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벌로 광야에서 죽었다. 배가 고파서 죽은 게 아니라 애굽성을 고치지 못하고 반역을 해서 형벌로 죽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썩는 양식을 위해 살면 하나님의 형벌이 들어간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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