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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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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 못난 놈, 더 나쁜 놈
열왕기상 20:1~12
요즘 세상에는 나쁜 놈과 못난 놈뿐만 보입니다. 나쁜 놈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데다가 용맹스럽기까지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역사를 부정하고, 정의를 왜곡하며 평화를 반대하고, 민족 배신을 당연시하는 이들이 차고 넘쳐 세상을 자기 멋대로 주도합니다. 부끄러움도 없고 인품도 한결같이 천박합니다. 반면 못난 놈은 착하기는 한데 용기도 없고 비겁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딱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나쁜 놈들 때문입니다. “나 벤하닷이 말한다. 너의 은과 금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네 아리따운 아내들과 자녀도 모두 나의 것이다”(20:3).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런데 시리아 왕 벤하닷만 그런 게 아닙니다. 그 길을 따르는 벤하닷의 후예들이 역사에 수없이 많았고 지금도 천지에 널려있습니다.
세상에 희망이 없는 것은 못난 놈들 때문입니다. 못난 놈들의 이야기는 차라리 슬픕니다. 병자호란(1636) 때 이 나라의 많은 여성이 청나라에 끌려갔습니다. 그 수를 대략 50만 명 정도라고 가늠합니다. 병자호란 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 때에도 그랬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은 왕과 사대부 남자들인데 그 폐해는 고스란히 약한 백성과 여성의 몫이었습니다. 조선의 문인 신계영(1577~1669)은 1624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 포로로 잡혀 간 조선인 146명을 데려왔고, 1637년에는 속환사로 청나라 심양에 가 600여 명의 포로를 데려왔습니다. 그후 최명길 일행이 다시 780명을 속환해 왔고 그 뒤에도 속환은 계속되었습니다. 속환이란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의 몸값을 치르고 데려오는 일인데 심양에는 속환시(贖還市)가 열려 물건값을 흥정하듯 몸값을 흥정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속환하여 데려오면 무엇합니까? 대부분 관노가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여성들은 환향녀의 억울한 삶을 이어야 했습니다. 당시 임금인 인조는 ‘홍제천에서 몸을 닦고 한양에 들어오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으나 남편들은 돌아보지 않았고, 아비들은 ‘가문을 더렵혔다’며 문전박대 하였습니다. 못난 놈들입니다. 나쁜 놈들보다 더 나쁜 놈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조차도 더 악한 시리아의 벤하닷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놈보다 더 나쁜 놈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의 상전이신 임금님, 임금님의 말씀대로, 나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모두 임금님의 것입니다”(20:4). 힘을 숭배하는 세상에서 힘을 갖지 못한 자는 치욕을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 붙어 아부와 아첨을 일삼아야 생존이 가능합니다.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강포한 질서가 과연 바람직한 세상의 모습일까요? 힘이 숭배되는 세상이 아니라 의가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이런 치욕과 악한 질서를 종식할 수 있습니다.
못난 놈들이 나쁜 놈들의 강포와 협박을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비굴해지면 역사는 어두워집니다. 나쁜 놈이 교활한 악당일수록, 못난 놈이 비겁한 겁쟁이일수록 세상은 어둡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나쁜 놈과 못난 놈 사이에서 괜찮은 놈이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착한 의인들이 나쁜 놈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 길을 꼿꼿이 걸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나쁜 놈과 못난 놈 사이에서 살고 있는 오늘 우리가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고민합니다.
주님, 세상은 여전히 포악한 이들이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마스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차별 공격을 퍼붓고 그 과정에 애먼 시민들만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주님, 힘이 숭배되지 않는 세상, 주님의 뜻이 존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202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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