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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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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신, 들의 신"
열왕기상 20:22~34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20세기 초 유고슬라비아의 교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한 소년이 실수로 주일에 사용할 성찬용 포도주를 쏟았습니다. 화가 난 교회 책임자는 아이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아이는 교회를 뛰쳐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후에 이 소년은 성장하여 유고슬라비아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는데 바로 요시프 브로즈 티토(1892~1980)입니다. 대통령이 된 티토는 종교 탄압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신학교를 폐쇄하며 많은 성직자를 살해하거나 추방하였습니다. 물론 티토가 갖고 있던 편향된 이념의 역할도 있었겠지만,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도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습니다. 만일 소년 티토가 실수하였을 때 교회 어른으로부터 용서와 사랑의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우리말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말재주를 높이 쳐줍니다. 말로 싸움을 만들기도 하지만 말로 화해와 협상을 하기도 합니다. 말로 상대를 공격하기도 하지만 말로 자기변명도 합니다. 시리아의 신하들이 벤하닷에게 첫 번째 전쟁의 패인을 분석하고 다음 전쟁에서 승리를 다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얼토당토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입니다. 저번에는 산에서 싸웠으므로, 우리가 졌습니다. 그러나 평지에서 싸우면, 우리가 그들을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20:23). 벤하닷의 신하 중에는 말재주가 뛰어난 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말에 진실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벤하닷의 자만심이 가장 큽니다. 그는 자기 힘을 과신한 나머지 이스라엘을 얕보았습니다. 게다가 전장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지도자답지 않습니다. 지도자가 이 모양이면 신하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 자리를 지켰더라면 첫 전쟁에서 그렇게 심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하들은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이고, 우리의 신은 들의 신’이라는 말로 패장을 편안하게 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였습니다. 시리아 신하들의 이런 주장은 두 번째 전쟁에서도 패인이 되었습니다.
이듬해에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역시 중과부적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아합 왕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리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은 아니라고 하니, 내가 이 큰 군대를 모두 네 손에 내주겠다. 이제 너희는 곧,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20:28). 그리고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시리아의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목숨을 구걸하였습니다. 이 역시 뛰어난 말재주의 신하가 조언한 대로였습니다. “이스라엘 왕가의 왕들은 모두 인정이 많은 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목에 줄을 동여 매고, 이스라엘 왕에게 가면, 어쩌면 그가 임금님의 생명을 살려 줄지도 모릅니다”(20:31). 아합 왕은 벤하닷을 형제애로 받아들여 생명을 살려주고, 벤하닷은 자기 아버지가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은 땅을 반환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전쟁이 여기에서 끝났다면 아합왕의 선처는 탓할 일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은 생각보다 영리하고 사악합니다.
하나님, 주님을 산의 신으로 축소하여 이해하는 이들에게 그 이상의 존재이심을 보이셨듯 오늘 이 땅에서 주님을 오해하고 곡해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십시오. 거짓과 증오를 일삼으며 힘을 숭배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십시오.
2023. 10. 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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