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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열왕기상 21:1~10
우리 말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할 바에는 남도 갖지 못하도록 심술을 부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에는 그 의미 외에도 마음속 욕망이 행동으로 표출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고약하게 비틀린 생각을 가진 자일수록 악한 욕심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된 사람이라면 스스로 과욕임을 알아 절제와 성찰에 이르겠지만 못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속셈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아합의 왕궁 옆에 좋은 포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포도원은 나봇의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아합은 그 포도원에 대하여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 포도원을 내 것으로 하면 좋겠다. 저기까지 정원을 확장하면 좋을텐데’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욕심이 집요하면 행동화하기 마련입니다. 아합이 나봇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그대의 포도원이 나의 궁 가까이에 있으니, 나에게 넘기도록 하시오. 나는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려고 하오. 내가 그것 대신에 더 좋은 포도원을 하나 주겠소. 그대가 원하면, 그 값을 돈으로 계산하여 줄 수도 있소”(21:2). 아합의 말에 불법성은 없어 보입니다. 나봇이 허락만 하면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거래입니다. 그런데 나봇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제가 조상의 유산을 임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입니다”(21:3). 나봇은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 25:23)의 말씀을 상기하여 왕의 거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아합왕은 이 일로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왕은 화를 내며 왕궁으로 돌아온 후 식음을 전폐하고 끙끙 앓았습니다. 악한 욕망의 추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합왕은 ‘힘으로도 못하는 일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악하기는 하였지만 자기 한계를 인식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이세벨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세상에 힘으로 못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이 정의이고, 힘이 진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녀가 믿는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 신앙이 만든 이방인의 가치관입니다. 이세벨은 ‘한 나라의 왕이 이런 하찮은 문제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말인가’고 아합을 비웃었습니다. 이세벨의 생각은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시리아의 왕 벤하닷의 생각((20:3, 6)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세벨의 나봇 포도원 강탈 사건은 권력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큰 유혹 거리입니다. 오랫동안 논의하여 온 고속도로가 하루아침에 노선이 변경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습니다. 그 근처에 대통령 처가의 땅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되자 담당 장관은 화를 내며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를 선언하였습니다. 웃지 못할 코미디 같은 일이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다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한심합니다. 힘이 있다고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은 악한 왕 아합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위하지 않는 힘은 폭력입니다. 유교에서 된 사람이란 지혜와 청렴과 용기와 재주를 갖추고 거기에 예술의 안목을 더한 사람으로서 이(利)보다 의(義)를 중히 여기고, 위험한 일을 만났을 때는 목숨을 바칩니다. 된 사람이란 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못된 사람일수록 힘을 숭배합니다.
하나님, 힘을 숭배하는 이들 때문에 이 세상에서 역사와 정의가 왜곡되고, 전쟁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이 땅에 못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제발 된 사람들도 등장시켜 주십시오.
2023. 10. 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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