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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가 없어야
열왕기상 22:15~28
미가야는 외골수 예언자입니다. 권력자의 달콤한 회유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협박에 굴하지도 않는 보기 드문 예언자입니다. 시리아에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는 전쟁의 승리를 장담하는 예언자 400여 명의 예언을 들었던 아합 왕이 미가야에게 물었습니다. “미가야는 대답하시오. 우리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 두는 것이 좋겠소?”(22:15a) 여기서 아합은 전쟁의 당사자를 ‘우리’라고 표현하므로 함께 있는 남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을 은근히 포함하였습니다. 미가야가 대답합니다. “올라가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곳을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22:15b). 미가야의 답변은 권력에 길들여진 궁중 예언가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고 복수 물음에 단수로 대답하였습니다. 이 답변을 들은 아합은 단번에 진정성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평소에 듣기 싫은 소리를 자주 하던 모습과 다르자 아합은 미가야에게 진실을 다그칩니다. 진실과 상관없이 살던 자가 진실을 구하는 모습이 이례적이어서 희극처럼 보입니다.
마침내 미가야가 진실을 말합니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이산 저산에 흩어져 있습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 떼와 같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이들에게는 인도자가 없다. 제각기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여라’ 하십니다”(22:17). 이는 아합왕의 죽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심각한 역설이 있습니다. 보통 목자가 없으면 양들은 길을 잃거나 사나운 짐승의 먹이가 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미가야는 ‘목자가 없으므로 양 떼가 집으로 편안히 돌아간다’고 합니다. 예언자 미가야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악한 왕 아합을 거짓 목자라고 고발합니다. 거짓 목자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면서도 양떼를 먹이지 않습니다(겔 34:3). 거짓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가 지도자인 양하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은 이태원 10.29 참사로 159명의 꽃다운 젊은이가 어처구니없게 생명을 잃은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1년이 지났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진정 어린 마음으로 사과하지 않습니다. 지도자 인양하는 이들은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불순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304명의 생때같은 아이들을 하늘로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날 수 있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비가 오는 날 지하차도에 들어갔다가 물에 잠겨 참변을 당하는 일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장비도 지급하지 않은 채 실종자 수색작업에 떠밀린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생명을 잃었습니다. 피해자들은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닙니다. 일상을 살아가다가 당한 피해입니다. 누구라도 참변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책임지지도 않고, 사과도 하지 않고, 오직 권력욕에 사로잡혀 정적을 제거할 궁리만 하는 지도자는 없느니만 못합니다. 이런 목자는 차라리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들이 편안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거짓 목자는 사라져야 양들이 평안합니다.
미가야는 진실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 시대 문제는 거짓 목자가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거짓 목자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문제는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예언자들의 입에 진실을 담아 주십시오. 두렵고 외롭더라도 본분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없느니보다 못한 거짓 목자들을 주님께서 심판하여 주십시오. 이 땅에 희망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2023. 10. 29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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