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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열왕기상 22:29~40
이스라엘 왕 아합이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죽었습니다. 예언자 미가야가 이 전쟁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였음에도(28) 불구하고 아합왕은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악하고 못된 인간일수록 악을 도모하여 제 운명의 결말을 스스로 재촉하나 봅니다. 아합왕은 미가야의 예언을 건성으로 들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바 있습니다. 아합은 승리를 자신하였습니다. 넘치는 자신감은 자만심에 이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잠 16:18)며 지나친 자신감과 교만을 경계합니다.
그런데도 뭔가 두려웠던지 아합왕은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자신의 옷을 입혀 시리아군의 공격 목표가 되게 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적에게 혼선을 주거나 전략적 이유로 자기 부하를 왕으로 위장시키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연합국의 왕을 변장시켜 출전시키는 일은 역사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아합왕의 이런 무모하고 사악한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합이라는 인간에게 선한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사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볼 뿐입니다. 뻔한 속임수이고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여호사밧은 이러한 꼼수를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시라아 군사들의 집중 공격을 받아 여호사밧이 죽는다면 남 왕국 유다의 운명은 어찌 될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한 왕’이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전쟁에 참전하는 과정에 여호사밧 왕이 신하들과 의논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혼인으로 이어진 개인적 인정에 이끌렸다는 점을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꼼수를 기획하고 실행한 아합왕이 참으로 사악하고, 이런 처지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여호사밧의 유약함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아합 같은, 악하고 못된 인간은 어느 시대나 여전합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어제 유족들이 모인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고 영암교회에서 드린 추도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날 영암교회는 종교개혁주일로 지켰습니다. 설교 본문은 열왕기상 22:15~28이었고 설교 제목은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였습니다. 교회 공식 문서인 주보에는 교회 행사로서 추도예배는 없었습니다. 다만 1~3부의 공예배를 모두 마친 후 회의를 위해 남아있던 17명의 장로와 함께 따로(?) 조용히(?) 추도예배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여호사밧에게 자기 옷을 입혀 전쟁에 내보내는 아합이 어른거리는 이유는 제가 너무 민감한 탓일까요? 바보 같은 여호사밧의 역할을 이 시대 교회가 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아합에게 교회가 이용당하는 것 같아 몹시 불편하고, 교회가 모욕당하는 것 같아 한 그리스도인으로 매우 불쾌합니다. 왜 교회는 이렇게 순둥이처럼 착하기만 해서 악인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해야 하나요? 아합의 사악함을 의심하는 제 편견이 틀렸기를 바랍니다.
아합왕의 시대는 더 일찍 끝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비와 어미를 그대로 빼닮은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땅도 그렇습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그런 시대가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여우를 피하려다 범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주님, 악인들의 간교함이 반복되는 인류 역사에 불안을 느낍니다. 저희가 소망하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언제나 가능한 것인가요? 저희가 마음을 다해 순종할 어린 양은 언제나 등장하나요?
2023. 10. 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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