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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의 하나님
욥기 1:1~12
욥기는 해석하기가 난해합니다. 내용도 난해하지만, 문장도 어렵습니다. 욥의 친구로 등장하는 1인칭 화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해하여 설득당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욥기는 재미있게 읽어야 할 성경입니다. 착하고 순한 욥이 친구들 앞에서 치열한 독설가가 되는 것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게다가 인생이란 욥처럼 예상 밖의 일로 원치 않는 고난에 직면할 수가 있으니 변화무쌍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꼭 정독하여야 할 책입니다.
욥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잠언>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욥기는 성찰적 지혜를 다룹니다. 성찰적 지혜란 한마디로 규범적 지혜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규범적 지혜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는 일을 합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땀 흘려 가꿉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따라 사는 지혜입니다. 규범적 지혜를 밑절미로 쓰인 책이 바로 <잠언>입니다. 그런데 욥기는 규범적 지혜가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너머의 지혜를 다룹니다. 규범적 지혜가 인류의 삶에 항상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계적인 법칙이거나 우주의 유일한 규칙은 아닙니다. 옛날에는 가난의 이유를 게으름 한 가지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이 가난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악과 불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을 성찰적 지혜라고 합니다.
우스 땅에 사는 욥은 규범적 지혜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1:1). 이 사실을 1~2장에서만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세 번이나 반복한 것(1:1, 8, 2:3)은 이후에 욥이 당한 고난의 원인이 그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읽힙니다. 저는 욥기를 읽으며,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운행의 질서를 창조하신 분이지만 그 법칙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하는 기계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언의 독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제되지만 <욥기>를 읽는 독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또는 ‘알 수 없는 하나님’에서 출발하므로 더 높은 신앙 지식을 요구합니다. <욥기>의 하나님은 상식과 보편적 지식을 통하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나님 그 이상이십니다. 난해하지만 그렇다고 불가해하지는 않습니다.
사탄은 욥을 의심합니다. 사탄은 의인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주님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감싸 주시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에나 복을 주셔서, 그의 소유를 온 땅에 넘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드셔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1:10~11). 하나님께서 욥을 향한 보호와 공급을 중단하면 하나님을 향한 욥의 경외도 멈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즈음에서 <욥기>를 읽으며 깨닫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죄와 악이 없는 사람도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착하고 의로운 사람도 고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모두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아하, 이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일들이 허다하고, 조금 잘못한 사람에게 과중한 벌이 주어지는 일이 반복되는가 하면 큰 죄를 짓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사탄의 하수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하는 사탄의 짓입니다.
주님, 만일 <욥기>가 없었다면 욥과 같은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만일 <욥기>가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고난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욥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 11. 3 금
사진은 영국 화가 #WilliamBlake (1757~1827)의 <창조주>입니다. 블레이크는 <욥기> 연작을 그린 화가입니다. <욥기> 묵상을 하며 그의 그림을 자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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