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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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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내, 어떤 친구
욥기 2:1~13
흠이 없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에게도 화가 임합니다. 악행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사람의 이성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흠이 많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악행을 일삼는 자가 득의의 웃음을 짓는 일도 있습니다(렘 12:1). 세속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보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법을 지키는 사람보다 불법을 행하는 이들의 인생이 더 신나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순둥이처럼 약해빠졌는데 하나님을 대놓고 거역하는 이들은 사자처럼 사납고 곰처럼 용감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악한 자들의 형통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보응과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설명되지 않는 일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고 믿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향한 욥의 경외함이 그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에 기인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은총을 거두는 날에는 그가 가진 믿음의 진위도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믿음을 바울은 ‘율법(또는 행위, 롬 3:20, 21)’이라고 합니다. ‘율법’이란 인과응보에 기반한 믿음입니다. 사탄이 욥을 고소하는 근거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권한을 주어 욥을 임의대로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그의 몸에는 손대지 말아라”(1:12)고 명했습니다. 사탄은 인재와 천재를 통하여 욥에게 화를 끼쳤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의 공작이 실효를 얻지 못하자 재차 화를 퍼붓습니다. 욥의 뼈와 살을 쳐 몸에 고통을 주면 찬양과 감사 대신 불평과 원망을 할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그 집념이 무섭도록 섬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용하십니다. 다만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아라”(2:6)고 단서를 다십니다.
사탄은 욥을 쳐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성 종기가 나게 하였습니다.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그의 아내가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2:9)고 악담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인생의 반려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인생의 지향을 함께한다는 사랑하는 아내가 고난을 함께 하는 동지가 되기는커녕 믿음의 훼방꾼이 되거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고통 중에서 욥이 대답합니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2:19)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갑니다. 욥의 고난 이야기가 주변에 퍼졌습니다. 욥의 친구 세 사람,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이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그들이 본 욥의 참상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친구들은 위로할 말을 잊었습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엉엉 울기까지 하였습니다. 밤낮 이레 동안이나 욥과 더불어 땅바닥에 앉아서 욥의 고통을 함께 하며 침묵하였습니다. 그들은 말이 없었지만 욥은 그 침묵에 담긴 위로의 메시지를 읽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잿더미에는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도 함께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악담에 비견되는 침묵입니다. 말이 힘을 잃을 때가 있고 침묵이 웅변일 때가 있습니다. 쏟아지는 비를 홀로 맞는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일보다 그 곁에서 함께 비를 맞는 일이 더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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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인과응보의 믿음이 아닙니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원리로는 믿음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올곧은 믿음의 세계를 변함없이 견지하겠습니다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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