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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와 고난
욥기 5:1~27
오 선생님은 지난해에 말기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20대였던 1980년대 문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인쇄업을 경영하는 오 선생님의 배려와 신세를 많이 졌던 저로서는 뜻밖의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믿음 생활을 잘하는 분이기에 3~4개월밖에 시간의 여유가 없다는 현실이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런 분일수록 사업이 잘되고 주변의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한창나이에 절망의 가파른 벽 앞에 직면하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 기도 제목으로 삼아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다가 지난주에 오 선생님의 사업장을 찾아 잠시 대면하였습니다. 병색이 사라진 밝은 모습으로 반갑게 대하는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 같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아무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 바쁜 일정들이 있어서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였지만, 오 선생님의 간증 요지는 이랬습니다. 우여곡절 많은 세상에서 자신의 종말 시점을 알지 못한 채 살다가 뜻하지 않게 삶의 종말을 마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에게 3~4개월의 인생 말미를 주셔서 감사하였고, 그 남은 시간 동안 혹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실수한 일이 없나 살피며 용서를 구하며 성찰의 시간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항암치료 효과가 좋아서 의료진도 놀랄 정도이니 이는 필시 자신을 위해 기도하여 주신 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이며, 몸에 있는 고통의 가시를 은혜의 현상으로 받아들인 바울처럼 남아있는 병의 흔적이 자신을 더 정직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오 선생님 말을 들으면서 제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실패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떤 원인에 의하여 화와 재난이 오기도 하지만 욥처럼 이유 없이 오는 고난도 없지 않습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한 자에게 자기 생각과 상식을 동원하여 함부로 재단하여 위로나 훈수를 두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잃고 몸에 악성 피부병으로 고통당하는 욥을 찾아와 위로하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을 찾아서, 내 사정을 하나님께 털어놓겠다”(5:8). “하나님은 찌르기도 하시지만 싸매어 주기도 하시며, 상하게도 하시지만 손수 낫게도 해주신다”(5:18). 엘리바스는 지금 욥이 하나님께 징계받는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러니 자기 잘못을 주님께 진심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구하면 회복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말이 욥에게 별로 위로되거나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죄와 악을 행한 결과로 당하는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회개와 반성을 통하여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행하거나 악행에 가담하지 않았는데도 고난 당할 수 있습니다. 욥이 그런 경우이고, 나사렛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의 고난 이야기가 없다면 십자가의 구속 논리도 불가능합니다. 고난받는 욥 이야기는 고난받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야기의 전제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은 어려움이 징계인지, 아니면 고난인지 분별하여야 그에 맞는 처신을 할 수 있습니다. 징계와 고난은 그 해법도 다릅니다.
주님, 세상에는 자기 잘못으로 징계를 받는 사람도 있고, 이유없이 고난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징계받는 이는 회개를 통하여 은총에 이르고, 고난받는 자는 믿음으로 이겨내도록 힘을 더하여 주시고, 고난에 담긴 대의를 반드시 이루도록 함께 하여주십시오.
2023. 11. 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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