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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 신앙의 위기
욥기 9:1~16
요즘 <욥기> 묵상하면서 고백하여야 할 한 가지 부끄러운 고민이 있습니다. <욥기> 묵상하면서 마치 제가 욥이 처한 상황과 고통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입니다. 삶에 불각시처럼 닥치는 고난에 대하여 정답을 알고 있는 듯한, 제3자적 태도와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에 담긴 허상과 위선을 간파하는 듯한 자세로 보일까 송구합니다. 물론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욥의 의로움을 먼발치에서조차 따르지도 못하고, 욥이 당한 고난의 극히 일부분이라도 당한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폭포수 같은 불평을 쏟아낼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하는 조리 있는 말들을 반박할 지식도 모자랍니다. 도리어 제 앞에 닥친 사소한 일조차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약골에다 제대로 된 신학지식을 갖추지도 못한 서생에 불과합니다. 경륜도 모자라고 지식도 박한 사람이 아는 체하는 것 같아 면구합니다.
수아 사람 빌닷은 욥과 욥의 자녀들이 당한 고통은 죄의 결과라고 단언하였습니다(8:4). “그러나 네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전능하신 분께 자비를 구하면, 또 네가 정말 깨끗하고 정직하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너를 살리시려고 떨치고 일어나셔서, 네 경건한 가정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8:5~6). 빌닷이 틀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에게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눈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동정과 자비의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너무 반듯하고 단정하여 인간미가 없습니다. 종교의 밑절미는 인간에 대한 긍휼입니다. 그런데 종교가 기득권과 섞이면서 차디찬 절대주의의 횡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인간미 없는 차디찬 대리석의 종교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런 종교의 성황은 세상을 더 어둡게, 더 차갑게 만듭니다. 이런 종교는 악의 화신입니다.
배우 나탈리 포트만(1981~ )은 유태계 미국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2018년 이스라엘 정부가 그녀에게 제2의 노벨상이라는 제네시스상을 제의하였을 때 그녀는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혹한 정책이었습니다. 개인의 명예와 인기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한 달 만에 1만여 명의 사망자가 생겼습니다. 그중에 상당수가 여자와 어린이라는 사실에서 유일신 종교가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믿음과 삶을 철저하게 성찰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과 논쟁을 한다고 해도, 그분의 천 마디 말씀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9:2~3).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불의하지 않았음을 주장한 것은 자신이 절대적 의의 상태에 있으며,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큰 재난을 당할 만한 죄에 이르지 않았다는 변명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우시며 인간의 재판장으로 불변한 존재이십니다. 욥이 인식하는 하나님은 천지와 우주를 지배하는 전능자이시며(5~9), 누구도 맞설 수 없는 절대적 능력자이십니다(10~16). 인간은 단지 “그분께 은총을 비는 것뿐이다”(9:15).
주님, 주님의 우주적 통치와 인생의 심판주이심을 믿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이유없는 재난과 전쟁과 슬픔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빕니다. 교회가 따스한 인간관을 갖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2023. 11. 1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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