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악인에게 관대하신(?) 하나님
욥기 21:1~16
소발은 ‘악인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며, 번영을 누리고 성공하여 하늘 끝에 이르더라도 하늘이 그의 죄악을 밝히 드러내고, 땅이 그를 고발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악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소발의 말이 실현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욥은 소발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잘 사느냐? 어찌하여 그들이 늙도록 오래 살면서 번영을 누리느냐? 어찌하여 악한 자들이 자식을 낳고, 자손을 보며, 그 자손이 성장하는 것까지 본다는 말이냐? 그들의 가정에는 아무런 재난도 없고, 늘 평화가 깃들며, 하나님마저도 채찍으로 치시지 않는다.”(21:7~9) 욥은 악인의 번영이 잠깐이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되어 자자손손 잘 먹고 잘사는 경우가 실재하다고 소발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소발의 생각과 욥의 생각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결이 다릅니다. 한 마디로 누구 말이 맞다고 하기에 머뭇거려집니다. 소발의 말은 기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말은 현실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로서는 소발의 말보다 욥의 말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아부하며 권력에 편승한 이들은 일제로부터 힘과 부를 하사받았습니다. 이광수, 최남선, 김활란, 모윤숙 등 지식인들은 앞장서서 우리 청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선동가 구실을 하였고, 교회는 1938년에 신사참배를 정당한 국가행사라고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예배당과 절간에서는 앞다투어 전쟁 헌금을 모았습니다. 의식있고 정직한 이들은 한반도를 떠나 북간도로 가 얼어죽을 각고,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의로운 신앙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목회자 양성하는 평양신학교와 그리스도 정신을 건학이념으로 하는 숭실대학교는 스스로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제가 망한 후에도 그 부역자들은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족 배신의 죄를 달게 받아 감옥에 가거나 회개와 반성을 통하여 개과천선하여야 할 이들이 도리어 기세등등하게 역사의 전면에 서게 된 것은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8년 10월,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렸지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이를 견제하고 방해하고 무력화하였습니다. 반민특위 의원들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여 결국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일을 무효화시켰습니다. 친일파들은 여전히 활개를 쳤고, 민족 독립에 참여한 의인들은 굴욕의 삶을 살아야 했으며, 출옥 성도들은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지금도 여전한 역사 왜곡 논쟁의 중심에는 친일로 권세를 잡은 이들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소발은 아침 안개처럼 잠시 후에 사라질 정도로 악을 가볍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악의 끈질긴 생명력과 번성력은 무시무시합니다. 욥은 그 사실을 직시하며 심판의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지 의심할 정도라고 토로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성공이 자기들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들의 생각을 용납할 수 없다.”(21:16) 악인들이야말로 규범적 지혜에 충실합니다. 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것이니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누구이기에 그를 섬기며, 그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한다”(21:15) 악인은 평안하고 번성하고 흥겹게 살다가 죽을 때에는 고통도 없이 조용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의인이 누려야 할 삶을 가로챕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악인의 번성이 일시적이고, 불의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더딜수록 세상은 더 극악으로 치닫습니다. 악인에게 관대하신 하나님께서 왜 의인에게는 혹독하신지 의문입니다.
2023. 11. 26 주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