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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빛이 싫은 사람들
욥기 24:1~25
욥기의 이야기, 특히 본문에서 욥이 하는 말은 아득한 옛날 욥이 살던 시절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욥의 격앙된 목소리가 오늘 이 시대 현실처럼 들리는 듯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다만 그때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합니다. “어찌하여 전능하신 분께서는, 심판하실 때를 정하여 두지 않으셨을까? 어찌하여 그를 섬기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판단받을 날을 정하지 않으셨을까?”(24:1~2) 심판의 날을 알 수 있다면 이유 없는 고난을 받는 이들로서는 큰 위로와 인내가 될 텐데, 안타깝게도 사람은 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도 심판의 날을 모르시는 것 아닌가 의심합니다.
심판의 날을 모르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납니다. 욥은 그 사실을 하나하나 적시합니다. “경계선까지 옮기고 남의 가축을 빼앗아 제 우리에 집어 넣는 사람도 있고, 고아의 나귀를 강제로 끌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과부가 빚을 갚을 때까지, 과부의 소를 끌어가는 사람도 있구나. 가난한 사람들이 권리를 빼앗기는가 하면, 흙에 묻혀 사는 가련한 사람들이 학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가서 숨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들나귀처럼 메마른 곳으로 가서 일거리를 찾고 먹거리를 얻으려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먹일 것을 찾을 곳은 빈 들뿐이다.”(24:2~5) 한마디로 악인들이 득세하고 힘을 가진 이들이 세상을 쥐락펴락합니다. 그 등쌀에 의인과 약한 자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남의 밭에서 이삭이나 줍고, 악한 자의 포도밭에서 남은 것이나 긁어 모은다. 잠자리에서도 덮을 것이 없으며, 추위를 막아 줄 이불 조각 하나도 없다. 산에서 쏟아지는 소낙비에 젖어도, 비를 피할 곳이라고는 바위 밑밖에 없다.”(24:6~8)
빛을 싫어하는 생물이 있습니다. 올빼미와 부엉이, 박쥐, 두더지, 지렁이 등은 빛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생명체입니다. 사람도 빛 앞에 서기를 주저하고 어둠에 어울리는 야행성의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사회악과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화되는 검찰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죄성과 싸우다가 사탄화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사유화하고 권력화하거나 인간사를 꿰뚫는 듯 거들먹거리며 자기만의 왕국을 구축합니다. 그런 이들일수록 어둠이 익숙하고 편합니다(17).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악을 자행합니다. 권력 남용하기를 항다반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일삼고 상대를 적대시하며 자신에 대하여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상대에 대하여서는 여간 까칠한 게 아닙니다. 이런 이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을 겪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들은 힘없는 자를 등쳐 먹고 자식 없는 여인을 학대합니다(21).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난에 직면한 욥은 그래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악인이 득세하며 밤의 황제처럼 군림하지만, 빛의 하나님이 이 그들의 악행을 낱낱이 살피신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악한 자들에게 안정을 주셔서 그들을 평안하게 하여 주시는 듯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을 낱낱이 살피신다. 악인들은 잠시 번영하다가 곧 사라지고, 풀처럼 마르고 시들며, 곡식 이삭처럼 잘리는 법이다.”(24:23~24)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악인들을 영원한 멸망에 처하기 위하여 잠시 시간을 주실 뿐입니다. 악인은 득의의 미소를 지을 것이 아니라 잠시 후에 있을 심판을 두려워하여야 마땅합니다.
주님, 악인이 벌을 받고 의인이 상을 받는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벌 받기를 두려워하거나 상 얻기를 탐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삶의 기본기를 저희에게 주십시오.
2023. 11. 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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