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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욥기 29:1~25
지금은 비록 누추하게 살아도 사람은 누구에게나 잘 나가던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를 지향하며 사는 듯하지만 사실은 과거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미래의 꿈이 힘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 능력인 셈입니다. 특히 히브리인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과거가 앞이고, 미래가 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끝없이 과거를 회상합니다. 특히 고난에 처할 경우에는 더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에게 망하고,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한 후에는 더욱 과거를 돌아봅니다.
그때 우리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였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시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한 아기를 물에서 건지셨어. 그가 자라 우리의 지도자가 되었지. 우리 조상들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고 광야 생활 막막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은 정말 특별했어. 튼튼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모습은 장관이었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으리으리했어. 그때 우리는 장담했어.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망하고 말았어. 우리가 시리아에게 망한 것은 과거를 잊었기 때문이야.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에의해 파괴된 이유는 우리의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야. 주님께서 주신 옛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야. 이제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면 그 뜻을 따라야 해. 과거가 미래를 여는 열쇠지. 암, 그렇고말고….
본문은 욥의 처량한 독백처럼 들립니다. “지나간 세월로 되돌아갈 수만 있으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던 그 지나간 날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때에는 하나님이 그 등불로 내 머리 위를 비추어 주셨고, 빛으로 인도해 주시는 대로, 내가 어둠 속을 활보하지 않았던가?”(29:2~3)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던 때를 그리워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을 친밀하게 대하셨고 아낌없이 베풀어주셔서 넉넉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공동체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권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욥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그때 욥은 약자의 이웃으로 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 과부들, 맹인과 장애인들의 편에 섰습니다. 힘을 이용하여 악을 조장하는 자들에게 맞섰습니다. 공동체에서 욥은 존경받았고, 그 가르침을 선히 수용하였습니다. 욥은 지금 고난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의 과거는 아름답고 찬란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맥락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욥의 호시절인 과거는 하나님의 사람이 가질 경건과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부요와 안전의 원천으로 삼는 인생, 사회적 약자의 편에 기꺼이 서는 담대함, 불의에 맞서는 용감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이 가질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있을 사건을 앞서 예고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조상의 지나간 이야기는 아스라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고스란히 이스라엘 백성의 현존경험이 되었습니다. 단재 신채호1880~1936의 말로 알려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어제가 있어야 이제와 올제가 있습니다. 오늘은 어제를 만드는 유일한 날입니다.
주님, 어제는 지나간 자랑거리가 아니라 올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시금석입니다. 욥은 어제가 있었기에 이제의 고난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어제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2023. 12.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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