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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2:18-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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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배장섭 목사 |
참고 : |
소멸하는 불
본문말씀 히브리서 12장 18-29절
1. 서론
2. 본론
우선 먼저 18-19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은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여기 18-21절에서 하신 말씀은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하나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 광야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도록 몸단장을 하게 하시고 시내산 정상 부근으로 부르시는데, 그 때 임하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기 이 말씀 중에 “그 소리를 들은 자들이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고 싶고, 말씀을 듣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는 즉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놀라운 영광을 목격하게 된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쉽게 말하면 너무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죽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이 직접 자기들을 대면하시어 말씀하시지 않고 모세가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것을 좋게 생각하신 하나님이 그 다음 출애굽기 20장에서 23장에 보면 모세를 중보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는데, 그 말씀을 전해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 다음 24장에 보면 시내산에서 율법 언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언약을 체결한 이후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칠십인 장로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는데, 그 때는 언약 체결 전 출애굽기 19장 광경과 완전히 180도 다르다고 할까? 출애굽기 19장에서는 그 광경이 너무 두렵고 떨릴 정도였다면 24장 언약을 체결한 후에는 10-11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나님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들은 하나니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고 증언한 것처럼 쉽게 말하면 천국을 경험한 것 같은 황홀함을 맛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출애굽기 19장은 언약 체결 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엄위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 반면 언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고 순종하겠다고 목숨 걸고 서약했기 때문에 그렇게 순종하게 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엄위위 하나님이 아니고 어떤 하나님? 나에게 있어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역시 로마서 10장 22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고 경고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뭐라고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시지만 또 다른 한편 준엄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성품은 서로 상극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 이유는 그냥 하나님 마음대로 그렇게 어떤 이에게는 인자하시고, 어떤 이에게는 준엄하게 대하시는 분이 아니고 객관적인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 조준이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기 때문에 인자하시고, 이방인이기 때문에 엄위로 대하시거나 이신칭의를 믿는 자는 인자하시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엄위로 대하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이든 간에 넘어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위가 임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넘어진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 22-24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18-22절에서 말씀하신 옛 율법 언약이 모세의 시내산 언약과 비교하여 새 언약의 경고하심을 비교하여 설명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25절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그런 연후에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듯이 쉽게 말하면 옛 언약보다 새 언약이 어떠하다는 뜻입니까? 더 무섭다는 뜻입니다.
29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는 말씀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는데,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너희가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 되는데, 이신칭의는 뭐라고요? 죄 지어도 괜찮도록 할 목적으로 예수님이 율법에 순종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니! 한 마디로 귀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게 믿어도 과연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3. 결론
말씀을 마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 사실 세상 종말이나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두려운 것입니다. 왜?
어차피 세상 종말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고, 또한 죽음 역시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삶이라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가 살아보니 솔로몬이 전도서 1장 2절에서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깊이 궁구해 보면 정말 헛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기 때문에 바울 역시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어 했던 것처럼 저 역시 하루라도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세상 종말이나 그 죽음 이후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신의 존재 증명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과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것처럼 세상 모든 거짓 종교나 철학은 접어두더라도 유일하게 진리를 담고 있는 성경을 가지고 가르치고 전하는 기독교조차도 엉터리 가르침이 얼마나 난무하는지 모릅니다.
순종을 부정하고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해야 된다든지, 회개하면 된다고 죄를 우습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그런 거짓 복음에 속으면 세상 종말이나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그 무시무시한 경고의 말씀처럼 무서운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그런 거짓에 속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도 돈 때문에 말 못하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기에 속아서 지옥 간 후에 그 때 비로소 땅을 치며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에게 아직 잠시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이 순간 우리는 정말 심각하게 이 문제를 고민해서 바른 진리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그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준비만 되어 있다면 세상 종말 아니라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고 한들 무엇이 두렵겠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부디 그런 준비된 저와 여러분이 되셔서 단 하나뿐인 천하보다 귀한 생명 후회함이 없는 그런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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