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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정신
욥기 31:24~40
욥은 성적 절제와 정결의 사람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일부다처제 사회입니다. 사회적으로 유력한 자가 여러 명의 여성을 아내로 두는 일이 스스럼없었습니다.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탐하여 오점을 남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은 성에 있어서 시대정신을 초월하여 매우 절제된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고 의를 실천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사회적 긍휼을 실천하였다고 증언합니다.
“나는 황금을 믿지도 않고, 정금을 의지하지도 않았다.”(31:24) 이 말은 친구들의 논리, 즉 욥이 당하는 징벌의 원인이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말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욥에게 ‘금을 돌보듯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특히 엘리바스는 욥을 단죄하는 세 번째 발언에서 “황금도 티끌 위에다가 내버리고, 오빌의 정금도 계곡의 돌바닥 위에 내던져라. 그러면 전능하신 분이 네 보물이 되시고, 산더미처럼 쌓이는 은이 되실 것이다.”(22:24~25)고 충고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욥은 자신이 물질 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단호하게 절제하고 있는지를 의연하게 말합니다. 욥은 배금주의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많은 재산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소득을 기뻐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재물과 소득을 자랑하고 뽐내는 일을 “높이 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벌로 사형을 받아도 마땅하다”(31:28)고 생각했습니다. 부자들이 들어야 할 말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욥의 관심은 더욱 특별합니다. 긍휼의 실천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는 원수라 할지라도 곤경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내 원수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나는 기뻐한 적이 없다. 원수가 재난을 당할 때에도, 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결코 원수들이 죽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여 죄를 범한 적이 없다”(31:29~30)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눈에 불을 켜고 온갖 구실을 다 찾아 사방팔방을 어슬렁거리는 사악한 이 시대가 슬픕니다. 정적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선의의 경쟁자입니다. 좋은 상대가 있어야 자신도 성장하는 법입니다.
욥은 대책 없는 나그네에게 자기 집을 열어 잠을 재우고 음식을 주었습니다. 세간의 악평이나 비웃음이 두려워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삼키는 졸장부는 아니었습니다. 욥은 의로운 일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을 실천했고, 생각하는 바를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의 폭도들이 두려워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대신하여 두 딸을 폭도들의 손에 맡기려고 하였습니다(창 19장). 사사시대에 에브라임에 사는 레위인이 집을 나간 첩을 찾으러 베들레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 불량배에게 시달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위인을 손님으로 맞아들인 기브아의 에브라임 노인은 자기 딸과 레위인의 첩을 불량배에게 내어주어 봉변을 면하려고 하였습니다(삿 19장). 위기의 순간에 손님을 보호하려고 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모두 비겁합니다. 오늘 우리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욥이 우러러보입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당해서는 안 된다. 만일 적들이 모여있는 여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 모두 욕보지 않으려면 너희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보내라’고 한다면 그들이 와서 모두를 욕보이게 할지언정 어느 한 여자를 뽑아서 욕보게 해서는 안 된다.” 랍비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1907~1972의 말입니다.
주님, 오늘도 불의와 부정과 불공정한 일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는데 저는 비겁하여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에 맞설 능력 주시기를 빕니다. 쾌락과 물질을 숭배하는 세상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를 구합니다.
2023. 12. 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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