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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빌립보서 2:5~30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2:5~8)
주님의 십자가 위에 세워진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버리고 사탄의 마음을 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고 하나님 나라 역사를 퇴행하게 하는 만행에 앞장섰던 적이 적잖습니다. 교회는 땅 위에 존재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 땅에서 맛보는 하나님 통치 기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가 실현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인에게는 어머니 역할을 하고, 교제와 나눔의 현장이자 성숙을 위한 교육이 실현되고, 주님의 지상 명령인 선교를 수행하는 기관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를 따를 거룩한 의무가 있습니다. 다만 신학과 교회 질서가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신학의 강조점과 교회 정치 체제가 상이하게 되면서 교파가 나누어지기도 하였으나 모든 지상 교회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와 최대공약수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품어 마땅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평화의 마음 대신 증오와 분쟁의 마음을 품음으로 교회 본질에서 벗어나는 일이 역사에서 잦았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배척한 것은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도 권력욕이 스며들 여지는 언제나 있습니다. 잠시만 한눈팔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곁길을 걷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과 권력을 추구하는 일은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혼동하여 권력을 지향하면서도 주님을 따른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대책이 없습니다. 땅 위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부단히 조심해야 하고 스스로 성찰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교회 안에서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는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든지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마음을 상실하였을 때는 비난과 조롱을 받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는지를 보면 오늘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가 그린 바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렘브란트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에 바울뿐만 아니라 신약 성경을 기록한 마태 등 사도들도 그렸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 그리고 구약의 사건들도 묘사하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성경 이야기의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깊은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렘브란트를 위대한 화가로만 이해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렘브란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울은 한결같이 깊은 사색에 잠겨있습니다. 그의 작품 <사도 바울>1657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른손으로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춘 사이에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깊은 사색에 빠져있습니다. 바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거룩해 보입니다. 벽에는 바울을 상징하는 장검이 세워져 있습니다. 날 선 검은 날 선 생각이 만듭니다.
주님,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복음의 진도도 멈추지 않습니다. 생각이 멈출 때 복음은 권력과 야합하기 십상입니다. 생각하기를 게을리하여 스스로 복음 가치를 소멸시키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2024. 12. 2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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