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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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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탄 설교는 조금 신중했으면 하네요
수년 전부터 한국 교회에 이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케네스 E. 베일리,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에서 시작된 예수님 탄생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그 책에서 비롯되어 "빈방 있습니까?"라는 드라마가 잘못된 내용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의 "말구유" 탄생은 비참한 탄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요컨대, 누가복음에서 요셉의 가족이 "방을 못잡고 구유가 놓인 장소를" 숙소로 잡은 것은 결코 산모가 무정하게 방치되어 그리 된 것이 아니라, 나름 최선을 다한 손님 대접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과연 <빈방 있습니까?>는 잘못된 드라마인가? 저는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견해에 크게 반대합니다.
일단 "마굿간"과 "말구유"는 사실 약간 잘못된 번역인 것은 맞습니다. 아마 분명 그곳은 "나귀 굿간"일거에요. 당시 많은 가정은 짐 부리고 타고 다니는 나귀를 키워야 했거든요.
문제는 우리 말에 "나귀 굿간"은 없는 말입니다. 마굿간이나 외양간인 거죠. 그래서 저는 그냥 "마굿간," "말구유"라 해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요셉 가족은 푸대접받은 것이 아니라, 나름 정중한 대접을 받은 편이란 말인가? 제가 보는 누가복음의 의도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가장 평면적이고 쉽게 이해되는 누가의 의도를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말 단순합니다. 그냥 요셉 가족은 "숙소를 못잡았다"는 겁니다.
즉, 어디에서도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태어날 아기 예수는 환영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환영받지 못한 탄생' ... 이것이 누가가 말하고 싶은 보고입니다.
목수였던 요셉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그 증거로 복음서를 보면, 얘를 낳은 마리아가 양과 비둘기가 아닌 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요. 레위기에서 그건 가난한 사람들 정결례 제사거든요.
분명 여비가 부족했던 그 가난했던 요셉 가족이 머물 여관(?)이나 숙소를 찾기란 힘들었다고 봅니다.
여기서 숙소의 헬라어 <카탈루마>는 "여관"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객실"(카탈루마)과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려간 "여관"(판도케이온)을 구분하죠.
그러나 저는 카탈루마가 여관과 객실을 포함한 보편적인 숙소로 여관을 포함한 의미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다 뒤져보았는데, 70인경은 이 단어에 그런 구분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단어는 일관되게 70인경에서 여관이든 가정집이든 단순히 "객실, 묵을 곳"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lodge"로 간주하죠. 저는 그것이 더 보편적인 어법인 듯 보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요셉 가족은 결국 '여관'을 포함 일반 가정집의 '객실'에 머물 곳을 구하지 못한 궁지에 몰린 상황으로 이해됩니다.
당시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 실제 "여관"이 있었는지 모르나, 그건 중요한 사안이 아닙니다. 그냥 어디든 "누울 자리"가 남은 "카탈루마," 즉 "묵을 곳"을 구하지 못한 겁니다.
예레미야스는 명저 <예수 시대 예루살렘>에서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에 많은 숙박시설이 있었고, 절기 때마다 도시가 북적거렸고, 사람들은 방을 잡으려고 아우성 쳤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런 특수한 성수기엔 대실비도 올라갔겠죠. 예레미아스는 5-7만명에 이르는 순례객들은 여관을 못잡으면, 천막을 쳤다고 말합니다.
많은 일반 가정집에는 '객실'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언뜻 이해가 안가는 것은 일반 가정 집에서 연중에 손님이 얼마나 온다고 항시 비어 놓은 객실이 있을까요?
설사 가옥 구조에 객실 용 방이 있었더라도 저는 평상시에는 가족 주거용 응접실 같은 방이고 손님이 오면 내어주는 '객실'로 용도변경되었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런 특수기에는 돈을 받고 대실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셉이 방을 못 구한 이유일 수 있죠.
당시는 특수한 상황, 즉 마치 명절 대목과 같은 시기였죠. 인구조사 때문에 대거 베들레헴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지금 아마 웃돈을 주고도 숙소가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는 '구유'에 눕힌 겁니다.
여기서 초점은 '묵을 곳이 없어서 구유에 눕혔다'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아마 읍내의 여관들은(있었다면) 이미 다 찼고, 객실도 손님들로 다 들어차 구하지 못한 정황으로 보입니다. 누가의 강조점은 이래저래 아기 예수의 낳을 곳을 못 구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베일리의 주장의 결정적 근거는 당시의 가옥 구조입니다. 올린 그림에서 보듯이, 그는 가옥 구조상 구유는 마굿간이 아닌 주인 가족들 방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주인의 안방에 나귀 굿간이 붙어 있는데, 안방에 "구유"가 놓여 안방에서 편하게 꼴을 주는 구조였다는 설명이지요.
결국 주인과 주인 식구들이 안방에 있었는데, 그 방에 요셉과 마리아와 탄생한 아기 예수가 함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굿간 탄생이란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네,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굿간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느냐 아니냐가 초점이 아니라 봅니다. 본질은 "구유통"입니다.
구유통을 놓는 자리는 분명 사람 자리가 아닙니다. 짐승을 위한 누추한 공간입니다. 그러니 저는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냥 마굿간 탄생으로 가도 큰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나귀 밥통이라는 나귀의 공간에서 태어난 것이니까요.
거긴 사람을 눕힐 자리가 아닙니다. 구유를 놓은 자리가 사람에게 적절할리 없습니다. 그곳은 분명 짐승의 자리로 누추한 곳이라 사람이 눕는 곳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 집에 객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카네스 베일리가 주장한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가옥 구조"는 저런 그림처럼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뒤져본 바로는 다양한 가옥 구조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베일리는 단 하나의 가옥 구조에 자신의 생각을 적용해서 결론적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부터 오류의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다 차치하고서라도, 카네스 베일리가 결정적으로 실수하고 놓친 사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당시 유대 사회의 엄격한 "정결법"입니다.
레위기 12장의 정결례 규정에 따르면, 산모는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 산모는 반드시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정황을 볼 때, 산모인 마리아가 주인과 같은 공간에 있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 집에 객실로 사용할 공간이 있었다면, 분명 주인도 손님도 그 독립적 공간인 객실은 내주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진통을 겪는 산모에게는 솔직히 매정해 보이는 장면입니다. 당시 손님 대접 문화에 충실했다면, 객실을 비우고 손님들이 구유통 주변에 눕고, 요셉 가족은 객실에서 아이를 낳아야 했을 것 같습니다.
레위기 법에 비추어보면, 당연히 저는 요셉 가족과 마리아는 별도의 공간에서 묵어야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부정결 문제, 그건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일부러 "정결례"를 하러 약 8-9km 거리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래서 가옥 구조가 제가 올려드린 다른 구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마굿간이 안방과 동떨어져 있는 가옥 구조죠.
의사였던 누가는 더욱 특별하게 "정결법"에 큰 관심을 갖고 예수 탄생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누가만이 요셉과 마리아가 "산후 정결례"를 엄격히 준수했다고 보고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분명히 산모는 격리조치가 당연했는데, 부정을 입게 될 주인 및 그의 가족과 동일한 공간에 있기는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즉 요셉 가족은 격리가 필요한 별도의 공간에 자리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추정컨대, 이미 수많은 외지 방문객들로 "객실, 묵을 곳"은 모두 만석이라 누울 곳이 없었고 가난한 요셉에게 값도 매우 비쌌을 겁니다. 그래서 주인의 최선의 배려를 받은 곳이 바로 "마굿간"이었다는 결론입니다.
또 한 가지 추가될 내용이 있군요. 어느 페친님의 글을 보니까, 베들레헴은 다 친인척들이 사는데, 환영받지 못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을 하십니다. 어떤 분은 또 그 증거로 룻기를 제시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룻기는 오히려 매정함의 증거가 되지, 베들레헴의 따듯한 분위기는 전혀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 뒤를 봐주지 않고 그 불쌍한 룻와 시어머니의 처지를 도와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땅 무르기와 과부에 대한 뒷바라지 관행에 의하면, 그 의무를 수행해야할 순서는 이렇거든요.
1. 가족
2. 삼촌
3. 사촌
4. 가까운 친족
5. 먼친족
그런데, 룻과 나오미를 책임져야할 사람들은 모두 나몰라라 합니다. 정작 그들을 건져낸 사람은 가장 먼 친족이었던 보아스였죠. 보아스가 특별히 칭찬받은 이유고요.
저는 사람 사는 동네는 비슷하다고 봅니다. 대접의 문화가 있는 반면, 다들 계산기를 두들기는 것이 인간입니다.
저는 요셉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환영받지 못한 정황이 맞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유에 눕혔다"고 누가가 보고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누울 곳이 없었다"는 말을 누가가 일부러 강조하는 걸 봐서, 초라한 행색의 요셉 가족은 분명 환영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누울 곳이 없었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지요. 이것은 대접의 문화로 해석될 수 없는 어법인 겁니다. 명백한 "배척"의 어법인 겁니다.
또한 "말 구유"에 눕혔다는 것은 그 어떤 정황으로도 짐승 먹이통에 아기를 눕히는 행위인데, 저는 안방에 있었다면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 생각합니다.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안방의 가장 안락하고 따뜻한 자리를 내놓는 것이 상식이죠.
결론적으로 누가가 예수님의 "마굿간"에서 "말 구유" 탄생을 말하는 목적이 뚜렷하다고 봅니다. 짐승의 자리,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으신 "왕"이 태어났다는 겁니다. 오히려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던, 변방의 소외된 "목자들"의 환영을 받지요.
결국, 아기 예수는 탄생의 순간부터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그 누추한 구유의 자리에서 태어난 겁니다.
"묵을 방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구유에 태어났다"
이게 가장 무난한 결론 같습니다. 고로 빈방 있습니까? 이 연극은 여전히 유효한 배경의 감동의 작품입니다. 누가의 서사의 흐름은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도 가장 누추한 구유에 아기 예수가 누우셨음을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탄생부터가 가장 비참한 탄생, 가장 밑바닥의 짐승의 자리에서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태어나셔야 모든 사람을 아래서 들어 올려 구원하실 수가 있었던 겁니다.
# 수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정리해서 올려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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