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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야
빌립보서 3:1~11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생각하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이유는 가난한 중에도 바울의 선교 여행 경비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바울과 그의 선교 사역을 위해 기도하였으며 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해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위문하고 옥바라지하는 등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됨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사랑과 참여와 헌신에 감사하며 주 안에서 든든히 서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빌립보교회에도 신학적인 문제와 신앙적 난제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과격한 유대주의자들과 거짓 교사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3:2) 바울은 세 번이나 반복하여 ‘조심하라’고 당부합니다. 교회를 위협하는 대적자들이(1:28) 얼마나 사악하고 집요한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가능 한한 빨리 빌립보교회를 방문하고 싶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2:24).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신 디모데(2:19)와 빌립보교회가 선물을 들려 바울에게 보냈던 에바브로디도(2:25)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므로 교인들을 위로하고 자신의 상황을 전하며 교회의 여러 상황을 안돈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한때 철저한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난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성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는데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그리스도인을 색출해 감옥에 넣었습니다(행 8:3).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러 가는 다마스쿠스 길에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행 9:3~5). 그리고 전혀 달라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자랑삼던 그가 율법을 배설물로 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3:8)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奇術로 사는 사람입니다. 정치· 경제·사회·문화·교육, 심지어는 종교계조차도 잔재주로 살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 나라의 정치를 보면 법 기술자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는 모양이 가관입니다. 자기편의 큰 죄는 못 본 체하고 상대편의 작은 죄는 이 잡듯 합니다. 공공선을 무너트리고 사욕을 쌓습니다. 작은 이익을 위하여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예상사로 합니다. 가진 힘을 극대화하고 자랑합니다. 자신의 습득한 지식과 경험의 잔재주와 잔기술로 자기 살 궁리만 하고 남과 경쟁하고 남을 골탕 먹입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 기술로 진리를 부정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술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술로 사는 사람은 이권에 메이지 않고 의를 추구합니다. 권력을 지향하지 않고 조화를 지향합니다. 가진 힘으로 약한 자의 편을 들고, 주머니를 열어 가난한 자를 돕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중시하지 않고 하늘의 판단을 귀히 여기며, 순간을 살지 않고 영원을 삽니다. 다마스쿠스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 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추구하는 거룩이 바로 예술입니다.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죽어도 상관없는 지금입니다. 바울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는 잔재주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잔기술 몇 가지로 영원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더럽고 추한 개들과 악한 일꾼들, 이념으로 피아를 가르는 몰지각한 이들을 경계하겠습니다. 2023. 12. 24(주일)
#렘브란트 <#사도_바울로_분한_자화상> 부분, 1661, 캔버스에 유채, 91×77cm, 내셔널갤러리,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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