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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인가? 조화인가?
아버지가 죽고 난 후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에서 우리는 빈센트가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철이 들면서 벌어지기 시작한 아버지의 관계를 빈센트는 어떻게 정리하였을까 궁금하다. 테이블 위에는 아버지 테오도뤼스 목사가 평소에 읽던 성경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에는 소설가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가 놓여 있다. 촛대의 불은 꺼져있고 배경은 어둡다. 사람들은 이 그림이 아버지가 추구하던 신앙과 가치에서 이탈하려는 빈센트의 강한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사랑하던 성경 앞에 세속의 소설책을 놓으므로 아버지가 존중하던 거룩의 질서를 비웃는다고 보았다.
아버지는 빈센트가 객지 생활을 하면서 세속 문학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칼뱅 사상의 영향을 받은 목사로서 세속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것을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빈센트는 가슴이 뜨거운 청년이었다.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복잡한 세상에서 급변하는 세상사의 일들에 호기심이 많았다. 에밀 졸라의 소설을 탐독하는 일을 나누랄 일도 아니다. 아버지가 틀린 것이 아니듯 아들도 잘못된 길을 걷는 게 아니었다. 만일 이 그림이 혹자가 말하듯 아버지와 아들의 결별에 대한 상징이라면 아버지 사후 빈센트의 삶이 이를 입증하여야 한다. 신을 부정하고 삶은 흐트러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빈센트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더 신앙적이었고 화가의 길을 신의 이끄심이라고 확신하였다.
빈센트는 아버지와 불화하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화해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빈센트가 아버지의 신앙 전통과 가르침을 무시했다고 단정하는 일은 무모하다. 도리어 빈센트는 이 그림 안에 아버지와 자신의 길이 다르지 않음을 암호처럼 묘사하였다. 펼쳐진 성경은 이사야서 53장이고, 에밀 졸라의 소설은 이사야 53장의 프랑스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거룩은 세속은 분리하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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