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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오신다”
시편 98:1~9
17~18세기 유럽 역사에서 사람이 자신의 이성과 경험에 의하여 세상을 개변하고자 일어난 운동이 계몽주의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로 대표되는 구시대의 낡은 사상과 가치를 청산하고 인간의 합리적 자유와 자율과 이성에 기초한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이때 몽테스키외(1689~1755)는 삼권분립을 제창하여 절대군주제를 비판하였고, 볼테르(1694~1778)는 장 칼라스 사건을 지켜보면서 <관용론>을 썼습니다. 루소(1712~1778)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주권재민을 외쳤습니다. 이런 주장과 생각들이 프랑스 대혁명(1789~1794)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혁명 후의 프랑스는 전보다 더 처참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구세대를 의미하는 앙시앙 레짐을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하였습니다.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은 낯설고 무서웠습니다. 서민이 중심된 자코뱅파와 온건 공화제를 주장한 지롱드파의 당쟁, 그리고 마라(1743~1793)와 로베스피에르(1758~1794), 당통(1759~1794) 등의 공포정치가 프랑스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였습니다. 이때 등장한 사형 도구가 기요틴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가 세상을 개변할 것 같지만 실제는 앙시엥 레짐보다 더 무도하고 포악하였습니다. 게다가 그후 인류는 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을 치르면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기대는 산산조각 무너졌습니다. 이런 세상에 등장한 사회 현상이 쾌락주의와 개인주의입니다. 공공선이 무너진 곳에 악이 기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의와 용기, 배려, 경건, 신앙, 관용, 사랑, 희망, 겸손 등 가치의 자리에 오만, 분노, 질투, 적대, 탐욕, 쾌락, 권력 등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문학과 예술 전반이 이런 시대 흐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무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 자코메티(1901~1966)의 <걸어가는 사람>(1960), 카프카(1883~1924)의 <변신>(1916) 등이 그렇습니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도리와 윤리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덕은 힘이고, 최악의 부덕은 도리와 윤리입니다. 그들은 반듯하고 살기 위하여 애쓰는 이들을 모욕하고 비웃습니다. 정직한 B 학점보다 부끄러운 A 학점을 칭찬합니다. 꿩 잡는 게 매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고 거짓말로 남을 속입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문서를 위조하고 남의 지식과 재물 훔치기를 다반사로 하며 그보다 더 한 일들을 예사로이 합니다. 뉘우침도 없고 반성도 없습니다. 악에 편승하는 일을 즐거워하고 남에게도 요구합니다. 그런 이들이 우리 정치판에 가득합니다. 일말의 양심도 없고 반듯한 지성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망나니 칼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누구든 권력에 밉보이면 큰일이 날듯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때 구체제를 몰락시키고 새 세상을 시작한 혁명정부가 프랑스 시민을 공포에 몰아넣었듯이 무도한 이들이 생명을 함부로 유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샤를로트 코르데(1828~1886)의 등장은 불가피할까요? 칼을 든 코르데말고 장미를 든 코르데를 기대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오시니, 주님 앞에 환호성을 올려라. 그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뭇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실 것이다.”(98:9)
주님, 주님이 오시는 날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악행을 일삼고 거짓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비웃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빕니다. 정의와 공정의 주님을 애타합니다. 장미를 드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023. 12. 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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