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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방분권
신명기 4:32~43
프랑스 대혁명이 있기 전 루이 16세 정부는 미국 독립혁명을 지원한 군사비 때문에 심각한 재정 파탄에 직면했습니다. 왕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직자와 귀족과 제3신분(평민)으로 구성된 삼부회를 베르사유궁에 소집하였습니다. 그런데 표결 방식으로 이견이 생겼습니다. 각 300명으로 구성된 성직자와 귀족 대표는 신분별 표결 방식을 주장했고, 평민 대표들은 머릿수 표결을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평민 대표의 주장이 거부되자 이들은 회의장을 테니스 코트로 옮겨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의회를 해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국민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즉 제3신분 대표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국민 대표이며, 더 이상 신분제 의회가 아니라 국민의회임을 선언한 것입니다(1789. 6. 20). 이를 ‘테니스 코트의 선언’이라고 하는데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이 장면을 스케치하였습니다. 작품의 중앙에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천문학자 바이이(1736~1793)가 선언을 이끌고 있고, 그 앞에는 종교인이 화합을 상징하는 돔 제를과 수도원장 그레그와르, 그리고 광야교회 출신으로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개신교 목사인 장 폴 라보를 그렸습니다. 화가는 자기 친구이기도 한 로베스피에르를 화면 오른편에 배치하여 가슴에 두 손을 얹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도 그렸습니다.
대혁명이 있기 전 절대왕정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이미 계몽사상가 볼테르와 루소와 디드로 등에 의하여 혁명 이론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사회계약론》(1762)이 끼친 영향은 막대합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다.” 이 책의 첫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는 말과 함께 많은 혁명가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루소의 제자 로베스피에르1758~1794는 프랑스 혁명 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과정에 참여하여 시민의 힘을 혁명의 중심으로 끌어내 역사의 진보를 실현한 정치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혁명정신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시민을 기요틴으로 처형하였습니다. 《사회계약론》의 첫 문장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신을 민중의 지도자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노예, 즉 권력을 숭배하는 종이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그때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불과 얼마 전에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 담긴 욕망을 자극하여 표를 얻으려는 얕은수가 분명합니다. 정치란 본래 공공선(公共善)을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책임진 이들에게서 공공선을 추구하는 선한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권력을 든든히 하기 위하여 정적을 없애는 일에만 몰두하고, 잔꾀로 민심을 훔치려고만 합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 모두를 불행으로 이끕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도피성이란 실수로 다른 이를 죽였을 경우에 피의 보복을 피해 하나님의 의롭고 자비로운 통치를 실현하는 사법적 제도입니다.
주님, 저희는 서울만 잘사는 곳이 아니라 이 나라 어디서든 잘 살고 싶습니다. 영적 지방분권도 실현되기를 빕니다. 힘을 숭배하는 이들을 징계하여 주시고, 힘을 공공선의 도구가 되게 해주십시오.
2024. 1. 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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