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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선 자
신명기 4:44~5:10
국경이란 나라와 나라의 영역을 가르는 경계입니다. 오늘날에는 국경 개념이 엄격하고 매우 정밀하지만 고대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두리뭉실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이를 매우 분명하고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한 지역은 아르논 강 어귀에 있는 아로엘에서 헤르몬이라고 하는 시리온 산까지와, 요단강 동쪽에 있는 온 아라바 지역과, 비스가 산 밑에 있는 아라바 바다까지이다.”(4:48~49)
이렇듯 국경선을 분명히 언급한 이유는 하나님의 시범적 통치가 시행되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거룩을 추구하고 모범을 실천할 책무가 주어진 셈입니다. 국경이 중요한 이유는 국경이 의미하는 지리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함의 때문입니다. 국경선 안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의 가치가 실천되어야 하고 이웃 나라들과 다른 질서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세의 국경 언급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뚜렷하고 엄격한 국경선을 가진 시대를 살면서도 모호한 문화의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특히 거룩과 세속의 영적 경계는 혼재되어 있습니다. 거룩 안에 세속이 똬리 튼 뱀처럼 군림하는가 하면 세속 속에서도 거룩의 결이 가열차게 역동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갖는 결단성과 하나님 나라 전사다운 기질이 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언약 상황을 언급하며 자신이 영광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과 백성의 중간에 섰다고 언급합니다. 그때 백성은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때에 당신들이 그 불을 무서워하여 산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주님과 당신들의 사이에 서서, 주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전하여 주었습니다.”(5:5)
개신교의 신학 원리 가운데 하나는 만인제사장론입니다. 이는 그 이전 교회에서 성직자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과장되고 강조된 것에 대한 반발입니다. 개신교에서 중보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런데 만인제사장론을 출발점으로 삼는 개신교 역시 교회 안의 직제를 목사와 평신도로 구분하는 현실은 자가당착입니다. 목사의 위치와 권위는 강조하고 일반 교인은 제자리걸음에 멈추게 하는 모습은 개혁 정신의 배반입니다. 목사는 권위의 자리에서 스스로 낮아져야 하고 교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능동화, 주체화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주님뿐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말씀과 몸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중간에 선 자’로서의 삶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세상은 조화롭지 못한 일들 가득합니다. 욕망과 쾌락과 증오에 경도된 삶을 성공이라고 부추기는 이들에 의하여 아수라장이 된 세상에서 조화와 질서를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본받는 일이자 중간에 선 자가 마땅히 할 역할입니다.
주님, 무질서에서 질서로, 혼돈에서 조화로,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길이 여간 버겁지 않습니다. 낙심하기 십상이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중간에 선 자의 사명감을 늘 충만케 하여 주십시오.
2024. 1. 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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