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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판에 새긴 말씀
신명기 5:22~33
처음 신학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모세오경은 주전 15세기 모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배웠습니다. 이를 부정하거나 의심하면 벼락을 맞거나 천국이 취소될 만큼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한국교회 최초의 신학논쟁이 김재준(1901~1987)과 박형룡(1897~1978)에 의하여 매우 격렬하게 펼쳐졌고 김재준은 1953년 제38회 장로회 총회에서 목사직에서 파면되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본 아오야 마학원 신학부를 마친 후 미국 프린스톤신학교, 그리고 웨스턴신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한 김재준은 <신학지남>(1934, 제73호)에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 연구’에서 축자영감설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일본 간사이학원 신학부 출신의 남대문교회 김영주 목사도 모세의 오경 저작을 의심하였습니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이런 신학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하고 그런 신학자를 축출하였습니다. 그런 교회가 1938년에 신사참배를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가 의례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은 부끄럽고 슬픈 일입니다.
이즈음에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유달리 한국교회는 신학 성향이 극명하게 보수와 진보로 갈린다는 점입니다. 둘 사이에 대화는커녕 대결만 일삼았습니다. 조화는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상대를 무시하고 적대시합니다. 보수주의 신학자는 자유주의와 싸운 것을 자랑하고, 자유주의 신학자는 보수주의에 맞선 것을 뽐냅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100년이나 되었습니다. 지금도 신학교에서 선생 것을 판박이처럼 베껴 공부한 교회 지도자들은 학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학도 학문의 범주에 있는 만큼 연구 방법에 따라 결과물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신학은 훨씬 풍요로워지고,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갈등에 대하여 진지하고 진일보한 답을 내어놓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하지만 읽을 때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십계명과 <신명기>의 십계명은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만일 ‘어느 것이 참이냐’로 논쟁한다면 <출애굽기>나 <신명기> 중 하나는 가짜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칼로 무를 자르듯 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약간 다른 점이 있어서 십계명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을 넓게 이해할 수 있고, 해석의 다양성과 적용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다음 같은 까칠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돌판에 새긴 십계명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을까? 아니면 이집트어였을까? 그도 아니면 제3의 언어였을까? 주전 15~10세기에 히브리어가 과연 존재하였을까?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 완고하고 경직되기 마련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그 의미를 바르게 알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다 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보다 위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성경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훗날을 기약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성경을 평생 읽어왔지만 모르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아는 척 나대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뜻을 부지런히 찾고, 더 부지런히 가르침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2024. 1. 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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