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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희망
신명기 8:1~10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방공호 위에
어쩌다 핀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호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질 않고
말이 숫제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중략)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제 지구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받으시리라
박남수1918~1994 시인의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할머니에게는 세상을 이 지경을 만든 악귀같은 이들에 대한 노여움 못지않게 채송화 작은 씨앗 속에서 희망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할머니가 전쟁통에 방공호 위에 저절로 핀 채송화 씨를 받듯 우리는 언제나 ‘내일이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 희망이 없던 시절이나, 민족상잔의 아픔과 포화 속에서도 ‘조금만 더 참자. 이 고개만 넘으면 평탄한 길이 나올 것이다’며 허리끈을 동였습니다. 독재가 일상이 되고, 자본이 폭력이 되고, 언론이 개가 되던 시절에도 달라질 내일에 대한 희망이 세상의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산마루 하나를 넘으면 그보다 더 험산 산이 기다리고 있었고, 천신만고 끝에 오른 평지가 순식간에 천 길 낭떠러지가 되곤 합니다.
“골짜기와 산에서 지하수가 흐르고 샘물이 나고 시냇물이 흐르는 땅이며,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 기름과 꿀이 생산되는 땅이며,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돌에서는 쇠를 얻고 산에서는 구리를 캐낼 수 있는 땅입니다.”(8:7~9)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묘사한 모세의 표현력이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것이고, 백성들은 그 땅에서 배불리 먹으며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거친 광야를 살아온 백성에게 가나안은 꿈의 땅입니다. 그 꿈이 오늘 우리에게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다산정약용, 1762~1836이 펴낸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아사침궐종자農夫餓死枕厥種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군은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 법입니다.
주님, 오늘 저희에게도 꿈의 땅, 은총의 때를 주십시오. 일제 강점과 분단이라는 광야를 100년도 훌쩍 넘게 살아온 저희에게 은총을 주십시오. 미워하지 않고도 사는 세상, 사랑이 덕이 되는 시대를 살고 싶습니다.
2024. 1. 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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