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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산에"와 "에발산 위에"
필자가 편찬한 "그림이 그려지는 복된 말씀(구어체성경)" 독자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신명기 27:4에 개역개정성경은 "이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로 썼는데,구어체성경은 왜 "에발산 위에 세우고" 썼느냐며 성경의 無誤說에 흠이 갈 염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세밀하게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성경 무오설에 흠이 갈 수 있다는 염려는 기우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필자가 소유하고 있는 열두 가지 한글 성경이 모두 "에발산에"로 썼는데 구어체 성경에 "에발산 위에"로 쓴 이유는 단순하다. "에발산"은 에발산 가장 낮은 밑에서부터 정상까지를 아우르는 말이지만 "에발산 위에"라고 하면 산의 가장 낮은 곳도 아니고 정상도 아닌 어떤 곳을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이다.
주지하는 대로 에발산은 저주를 선포하는 산(신 11:29)이었는데, 그 산에 큰 돌들을 세워 율법을 기록하고 번제 드릴 단을 쌓으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산 어디엔가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관점에서 "산 위에"라고 쓴 것이다
그리고 한글 성경은 모두 "에발산에"로 썼지만, 영어 성경은 각각 at Mountain Ebal[NLT], in Mountain Ebal[YLT, King James], on Mountain Ebal[NIV]처럼 다른 전치사를 썼다. 직역하면 "에발산에, 에발산 안에, 에발산 위에"로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성경 무오설에 흠이 갈까 봐 염려된다고 말한 사람은 아마도 성경의 축자영감설(성경의 글자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全無 하다고 주장하는 성경관) 신봉자로 보이는데,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성경 원본이나 사본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썼지 한글로 쓴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글자 하나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르게 쓴 것에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난달 버들시내편지에 기고한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한 기간이 창 15:13에는 400년인데 출 12:40에는 430년으로 썼다.(둘 다 모세가 썼다)
400년이 영감으로 쓴 것일까 아니면 430년이 영감으로 쓴 것일까? 영감으로 원본을 쓴 모세가 다르게 썼을까 아니면 사본을 쓴 사람이 다르게 썼을까?
* 아론이 죽은 장소가 민 33:38에는 호르산인데 신 10:6에는 모세라(모세롯)로 썼다.(둘 다 모세가 썼다) 그것뿐이 아니라 旅程도 서로 다르다. 민수기 여정은 모세롯> 브네야아간 > 홀하깃갓 > 욧바다 > 아브로나 > 에시온게벨 > 가데스 > 호르산[민 33:30-37]인데, 신명기 여정은 브네야아간 > 모세라 > 굿고다 > 욧바다[신 10: 6,7]이다. 아론이 죽은 곳이 호르산일까 아니면 모세라일까? 영감으로 원본을 받아 쓴 모세가 이렇게 썼을까 아니면 기억을 더듬어가며 사본을 쓴 사람이 이렇게 썼을까?
不問可知다.
신명기의 기록이 오류인 건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민 13:26에 보면, 가데스 바네아(가데스)에서 가나안
땅 정탐꾼들이 백성과 모세와 아론에게 정탐 보고를 했고, 보고를 받은 다음 진을 호르산으로 옮겼을 때 아론이 거기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명기에서 아론이 죽었다고 하는 모세라 진은 정탐 보고를 받은 가데스 진보다 여섯 진이나 앞에 있기 때문이다. 즉 아론이 정탐 보고를 받기 전에 죽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엽적인 오류는 필자가 십 년 십 개월 걸려 구어체성경을 편찬하면서 발견한 180여 개 오류를 2020년 8월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지엽적인 오류는 모세를 비롯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들이 받아 쓴 원문에는 당연히 오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경 원본은 소실되었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사람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필사한 사본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지엽적인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누히 감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믿는 데는 띠끌만한 하자도 없다는 것이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초창기에는 성경의 축자영감설이 필요했고 또 순기능도 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 세기가 훌쩍 넘어 지금은 정보화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엽적인 오류를 간과하고 성경의 무오설을 말하며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성경관은, 자칫 잘못하면 안티 크리스천들에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할 수 없게 만드는 시대착오적인 성경관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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