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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는 다수를 따르지 마라*
어떤 사람이 "기도 드립니다"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라며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쓴 글을 읽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글이다. 추측컨데 아마도 이 글을 쓴
사람은 "드립니다"라는 말은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물질을 드릴 때만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 사람 말대로 "기도합니다"가 어법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글 쓴 이가 간과하는 게 있는데, "하다"라는 동사는 명사 아래에 쓰여서 그 명사의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를 만드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공부하다, 운동하다, 숙제하다, 산책하다, 씨름하다, 노래하다, 기도하다"처럼. 따라서 "기도하다"가 전술한 대로 어법상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어서 기도하는 사람이 굳이 "기도합니다"라고 자기 동작을 보고하지 않아도 기도하는 거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라는 말은 기도한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릴 때에 국한해서 써야한다. "오늘 예배에는 아무개가 기도합니다"처럼.
그리고 "기도했습니다"라고 과거시제로 기도를 마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표현은 어법에도 틀린 말일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협박하는 느낌이 있어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다. 과거시제 표현은 어떤 행동이 마무리 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직전에 있었던 일을 말할 때에 국한해서 써야 한다. "오늘 예배에는 아무개가 기도했습니다" 처럼. 협박하는 느낌이란 말에는 뉘앙스가 있는데,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부탁했으면 마지막에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하고 말을 맺어야지 과거시제로 "부탁했습니다"하고 말을 맺으면 "내 부탁 들어주지 않으면 재미없어"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협박할 리야 없겠지만, 기도 마무리를 과거시제로 해서 듣는 사람이 하나님을 협박하는 느낌이 들게 할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또 하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데 "나 아무개씨를 사랑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상대가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기도도 마찬가지다. 지금 듣고 있는 하나님께 이러저런 걸 들어달라고 아뢰면서 마지막에 "기도했습니다" 또는 "기도드렸습니다"처럼 과거시제로 마무리하면, 우리말의 어법과 뉘앙스까지 아시는 하나님도 황당해 하기는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이 나라의 크리스천들은 무려 열 가지로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기도를 마무리하고 있다. "기도합니다, 기도하옵나이다, 기도했습니다, 기도했사옵나이다, 기도드립니다, 기도드리옵나이다,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드렸사옵나이다, 기도올리옵나이다,
기도올렸사옵니이다" 일반 교인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건 당연히 목회자들이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이래도 되는 걸까?
그때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어서 사람들이 각자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사람마다 제 멋대로, 사람마다 그의 눈에 바른 대로, 저마다 자기가 보기에 옳은 대로, 모두가 자기 맘대로, 사람마다 제멋대로, 각각 자기 소견에 선한 대로, 사람들마다 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행하며 살았다.[삿 21: 25] 지금 이 나라에도 하나님은 성경책에 가두어 놓고, 목회자들이 각자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기도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참고로 영어 기도는 "...pray in Jesus name, Amen" 하나다. 동사는 언제나 Pray이지 Prayed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모두에 "기도합니다"라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글을 쓴 사람이,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것을 드리지도 않는데 왜 "기도드립니다" 라고 기도해야 하느냐고 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드리다"에는 "신에게 비는 일을 하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도(祈禱)의 한자 "祈" 자와 "禱" 자는 둘 다 "빈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아뢰는 모든 걸 이루어달라고 빌고 비는 게 기도다. 그래서 "기도드린다"는 말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드린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이루어달라는 내용을 전능한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이다.
우리말 관용어에 "제사 지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모두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건 다 "제사 지내다"로 쓰지 않고 "제사 드리다"로 썼다.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지존하신 하나님이기에 관용을 벗어나 존댓말을 쓴 것이다.
구약 시대의 제사가 신약 시대에는 예배로 바뀌고, 제사나 예배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지존하신 하나님이다. 그러기에 제사도 드리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드려야 한다. 제사는 눈에 보이는 동물과 곡식을 드렸으나 예배는 예배의 모든 순서를,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내용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유감인 건 지금도 "예배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는데, 국어대사전을 찾아봐도 "보다"의 많은 뜻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예배를 보다"라는 말은 예배를 구경한다는 말 이외에 다른 뜻이 없다. 그래서 어법에도 틀린 말이다. 따라서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과 예배를 구경하려고 가는 사람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그리고 "기도하다"는 어법상으로는 틀린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하는 동작을 객관화 해서 말할 때에 국한해서 써야 한다. "기도하는 중에 기침이 나와서 혼났다"든지 또는
"기도하는데 갑자기 비상벨이 울려서 놀랐다"처럼.
어느 교회의 예배에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과 대표기도 하는 사람과 설교하는 목회자의 기도 마무리가 각각 "기도합니다, 기도드립니다, 기도하옵나이다"처럼 매주 다르다. 내가 맡은 순서에만 집중하느라고 다른 사람의 기도는 듣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인지는 모르지만 이래서는 안된다. 이 교회의 목회자들은 이런 거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은혜가 넘치는 설교와 찬양대의 아름다운 하모니 못지않게 기도의 마무리도 통일해서 예배의 모든 순서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주보에는 분명히 기도라고 썼는데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문을 낭독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드리는 자가 영과 진실로 예배드리게 해달라고 한다. (요 4:24) 기도하지 않고 기도문을 낭독, 즉 진실을 행하지 않으면서 진실로 예배드리게 해달라고 하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모순인가. 따라서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로, 기도문 낭독하는 사람은 "기도문 낭독"으로 쓰는 게 진실이다.
출이집트기 23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잘못하는 다수를 따르지 마라(Do not follow the majority when they do wrong)" 순종은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게 순종이고, 사무엘상 15장 22절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다.위에 언급한 열 가지 기도 마무리 가운데 "기도 드립니다"가 가장 바람직한 표현이다. "...옵니다"라는 표현은 어법상 틀린 표현은 아니나 지금 일상 대화에서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 내용 가운데 하나님께 무언가 청하는 말을 할 때는 하나님을 높이는 "시"와 나를 낮추는 "옵"을 넣어서 "응답해 주시옵소서, 인도해 주시옵소서, 치유해 주시옵소서"처럼 말하는 게 바람직한 표현이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약 3:2)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겠다는 결심만 서면 잘못하는 다수를 따르지 않을 수있다.(출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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