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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이 제일 아프다
신명기 12:1~19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감과 환대의 나라이고, 세상 나라는 경쟁과 시샘의 나라입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보듯 아버지의 집에는 배제와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름과 약함이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이런 나라를 꿈꾸며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런 나라를 실현하라고 당부합니다.
“거기에서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즐거워하십시오. 당신들만이 아니라, 당신들의 자녀들, 남종과 여종, 당신들처럼 차지할 몫이나 유산도 없이 성 안에서 사는 레위 사람을 다 불러서 함께 즐거워하십시오.”(12:12)
누구나 품부된 삶을 경축하는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부자와 권력자만 즐거워하는 세상은 이집트적 세계관의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가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을 숭배하는 이집트나 바빌론이 아닙니다. 모두 함께 즐거워하는 세상, 누구라도 영락의 삶에서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부하는 레위인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띕니다.
“부디 당신들은 그 땅에 사는 동안에 레위 사람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12:19)
모세의 특별한 당부를 받은 이스라엘은 십일조로 레위인의 삶을 보전하였습니다. 모세의 말은 두 가지 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레위인의 직무가 제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훗날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방점이 있습니다. 성경에 면면히 흐르는 구속사관이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른 하나는 레위인에게 아무 기업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는 교훈으로 읽힙니다. 우리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면 다 아프지만 새끼손가락이 제일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 있고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자식에 비하여 못나고 약해 보이는 자식이 부모의 눈에 밟히는 법입니다. 이 말씀을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세상은 훨씬 밝고 건강해집니다.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시설에 노약자와 임산부석을 따로 두는 이유나 장애인 주차 공간을 별도로 두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노동자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그리고 단체행동권이 주어지는 이유도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약자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노동권의 행사로 시민이 다소 불편하여도 참는 이유도 동일합니다. 재난에 직면하였을 때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자에게 더 많은 배려와 혜택이 주어지는 일은 문명사회에서는 당연합니다. 그것이 인류 사회가 짐승의 무리와 다른 점입니다. 만일 누가 이런 배려와 너그러움이 불편하다면 필경 그는 야만인에 더 가까울 존재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선대하였습니다. 처음 교회도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일을 당연시하였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무너지면 세상은 끝입니다. 말세란 다른 게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보듯 사랑이 식을 때가 바로 말세입니다.
주님, 부자를 위한 정부의 정책보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삶의 무게를 느끼는 이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시고, 부자와 힘있는 이들에게 배려의 마음을 주십시오.
2024. 1. 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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