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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정신
신명기 14:22~29
교회에 십일조를 꼬박꼬박 헌금하는 교인들을 대할 때 놀람과 감동이 있습니다. 십일조란 열 개를 벌어서 기꺼이 하나를 주님께 드리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헌금이 가능할까 싶습니다. 이는 행위이기 이전에 고백입니다. 돈이 왕 노릇 하는 맘몬의 세상에서 소득의 십의 일을 포기하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십일조 행위를 통하여 ‘나는 돈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는 고백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봉헌 기도를 올릴 때는 마음이 숙연하고 더 간절해지곤 했습니다. 신약시대 이후 십일조의 당위성에 의문이 없지 않지만 십일조 정신과 십일조 행위 앞에서 잠시 접고 두 손을 굳게 모았습니다. 십일조는 ‘나는 하나님 것이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나는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습니다’는 고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해마다 밭에서 거둔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14:22)
모세의 십일조 요구는 풍요와 번영을 목표로 사는 이방적 삶을 거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권면입니다. 이와 유사한 계명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탐욕 가득한 세상에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은 1/7의 소득을 더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일입니다. 이는 탐심과 욕망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삼으려고 사탄이 주입한 인간 본성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품격을 유지하라는 명령입니다.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14:28~29)
십일조의 용처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무 기업도 받지 못하고 성전 봉사의 일을 하는 한 레위인에게 주어지는 유산으로 레위인의 생계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민 18:21). 둘째는 성소로 가지고 가 일부는 잔치 비용으로 사용하였고, 일부는 성전 기구를 수리하는 비용으로도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셋째는 이웃 구제용입니다.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3년과 6년에는 십일조로 잔치를 벌이지 않고 각 성에 모아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와 과부 등을 돕는 일에 쓰였습니다. 이때 백성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 집에서 성물을 내어 레위 사람과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다 나누어 주어서, 주님의 명령을 잊지 않고 어김없이 다 실행하였습니다”(신 26:13)고 하나님께 맹세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이웃과 함께’는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이런 십일조 정신을 갖고 산다면 우리 민족의 통일도 식은 죽 먹기입니다. 이 땅의 시민들이 자기 소유의 십일조를 통일비용으로 지출할 믿음만 있다면 통일에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문제는 내려놓지 못한 욕망이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없다는 점입니다.
주님, 맘몬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물질에 얽매이는 현실에서 ‘하나님만이 제 인생의 주인입니다’고 고백합니다. 십일조 정신으로 사는 이들을 귀히 여겨 주십시오.
2024. 1. 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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