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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구원의 담지자
시편 100:1~5
사람에게는 누구나 종교성이 있습니다. 만일 종교성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짐승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 분명합니다. 종교성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신 은총으로 21세기 과학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가 사라지지 않고 삶과 공동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역할을 합니다. 삶이 고달플 때 사람은 절대자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성을 갖습니다. 사람은 삶의 절대 한계 앞에 서거나 위기에 처하였을 때 한계상황을 극복할 신적 존재를 찾기 마련입니다. 굳이 삶의 위기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삶 그 이상 피안의 가치를 추구하고 세속 그 너머의 거룩을 지향하는 이들은 종교를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목적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편만해지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내일보다 오늘의 삶에 더 집착합니다. 종교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종교의 세속화가 눈에 확연하고 거룩의 기능을 상실한 종교들이 난립하고 있어 그 존립이 위협받고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리는 쉬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종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종교적으로 지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라고 모두가 똑같지 않습니다. 미신과 샤머니즘을 비롯하여 단일신교, 다신교, 유일신교 등 다양한 종교가 존재합니다. 여전히 원시적이고 토속화된 종교가 있는가 하면 신학적 사유가 깊고 현대화된 종교도 있습니다. 민족 안에 갇혀있는 종교가 있는가 하면 세계화에 성공한 종교도 있습니다. 의식과 예배 방식도 다양합니다. 저마다 자기 종교에 진리가 있고 구원이 있다고 설파합니다. 진리와 구원은 종교의 화두이지만 모든 종교가 다 구원의 세계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모로 가도 서울을 갈 수 있지만 모든 종교가 구원의 종착지에 이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즈음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져야 할 종교적 태도가 있습니다. 종교란 하나님의 일반은총입니다. 누구에게나 골고루 베푸신 은총입니다. 하나님께서 종교를 허락하신 이유는 사람이 비록 죄를 지어 본래의 자리에서 추락하였지만, 극단의 상태에 이르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입니다. 인류는 종교를 통하여 죄를 극복하고 악을 제어하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은총으로서 종교의 모습입니다.
이에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특별은총의 담지자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성경을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대할 때 도토리 키재기 하듯 비교하여 우월의식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자신과 다른 종교를 비교, 또는 폄훼하는 시도를 하는 순간 구원의 절대성, 또는 진리의 담지자로서 자리가 흔들립니다. 그리스도교는 형식에 있어서 일반은총에 속해있지만 본질로는 하나님의 특별은총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자유케 하는 진리를 소유한 자의 너그러움과 구원을 확신하는 자의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100:3)
주님, 사람들은 여전히 구원의 종교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구원을 안내하지는 못합니다. 교회 조차도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자기 좌표를 자리를 잃기 쉽습니다. 인도하여 주십시오.
2024. 2. 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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