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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닮은 사람
시편 102:12~28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시인 박희준의 <하늘 냄새>입니다. 시에서 맑은 얼굴의 환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속(俗)에 익숙해진 이들을 따뜻하게 나무랍니다.
하나님을 정의하기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초월하여 존재하니 사람의 지성으로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안다고 할 수도 없고, 아예 모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이 부요할수록 신앙은 초라해지나 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많이 아는 척할수록 하나님 무지가 커집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지성으로 낱낱이 밝혀지는 신이라면 인간보다 못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신인 셈입니다. 그런 신은 결코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하여 함부로 아는 체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역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여서 사람의 한계를 초월하십니다. 그러면서도 보잘것없이 작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고민과 아픔과 신음에 귀를 기울여 응답하는 내재적 존재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신을 찬양해 마지않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신들과 격이 다릅니다. 대개의 신들은 왕과 귀족 등 강자의 신이고, 부자의 신이며, 기득권 옹호의 신이며 힘을 숭배하는 이들의 욕망에 응답하는 신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가난한 자의 한숨이 짙고 약자의 절망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민족의 하나님은 노예와 포로와 사지로 몰린 이들의 하나님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하나님입니다.
“갇힌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죽게 된 사람들을 풀어 놓아 주셨다.”(102:20)
만일 하나님이 강한 자와 부자의 편이라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을 닮는데 있다고 노래하는 이철 신부의 시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를 소개합니다.
돈 세는 것이 서툴고,
물정에 어수룩해도
음식을 나눌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중략)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기보다
용서해 줄 것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반대하는’ 특기를 갖기보다
‘찬성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나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
서로 믿어주고,
서로 희망이 되어주고
서로 사랑할 줄 안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닮았습니다//(후략)
주님, 주님을 닮고 싶습니다. 번뜩이는 지성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마음만은 갖고 싶습니다. 갇힌 자들의 신음에 응답하시는 주님처럼 약자의 서러움에 반응하는 믿음을 주십시오.
2024. 2. 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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