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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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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다른 마을로…
마가복음 1:35~45
도시화 현상이 오늘의 시대적 대세입니다. 도시는 더 팽창하여 거대화하고 있습니다. 흔히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를 메가시티라고 하는데 지구촌에는 이런 도시가 50여 개나 되고 서울은 세계 5위의 메가시티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 오직 성공과 생존만이 유일선(唯一善)인 사회, 온갖 음모와 술수가 벌어지는 곳, 양심이나 도덕보다 성공과 출세가 더 중요한 가치인 세상, 사람을 존귀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 가치로만 보며 목적이 아니라 수단화하는 장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곳이 바로 도시입니다. 도시가 클수록 비인간화 풍조가 만연합니다. 도시는 악이 스며들기 안성맞춤입니다. 도시는 사탄이 자기 권력을 확대하기 아주 좋은 공간입니다. 도시에는 탐욕이 있고 비리가 넘칩니다. 비인간화의 현장입니다. 도시에 살기로 하는 순간부터 사람은 무한 경쟁의 비인간화 경주장에 선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탄이 속이지 않아도 이미 악을 수용하기로 작심한 이들이 차고 넘칩니다. 사탄은 이삭줍기하듯 도시를 악의 소굴로 만듭니다. 인간다운 사람을 꿈꾸는 이들로서는 버텨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도시에 사는 이들은 도시에 살지 않는 이들을 천시하고 차별합니다. 문화와 경제와 교육과 의료 등 모든 영역에서 특별 대접을 받는 도시인은 비도시인을 조롱합니다. 비도시인은 불쾌한 열등감을 견뎌야 합니다. 이런 현상을 얍삽한 정치꾼들이 교활하게 이용합니다. 경기도에 속해있는 김포를 서울로 편입시키려고 꼼수를 부립니다. 철학은 없고 무책임한 정치인들은 시민을 속이며 악에 일조합니다. 과연 메가시티에 산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라는 어느 건축회사의 오래전 광고 문구가 생각납니다. 맘모니즘의 천박한 장사속이 뻔히 보입니다. 도시는 우아하고 신사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곳임을 입증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거룩한 교회조차도 숨을 쉬기 버겁습니다. 도리어 도시 정신에 함몰되어 거룩한 메시지를 상실하기일 수입니다. 도시에는 교회도 몰려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는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그렇습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교회가 무인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런 현상을 상술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합니다. 도시에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시점에 주님께서 한반도에 오신다면 과연 어디로 가실지 심각한 고민 없이 교회터를 잡는 일이 최선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이런 구조적이고 시대적 문제를 극복하려면 예수님처럼 ‘가까운 다른 마을’로 가야 합니다. 한 마을에 주저앉아 터줏대감이 될 것이 아니라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서야 합니다. ‘가까운 다른 마을’이란 기도한 후에 결정하는 곳입니다(35).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다른 마을이 있습니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1:38)
주님, 이 중늙은이에게도 가야 할 ‘가까운 다른 마을’이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란 정처 없는 노마드여야 하는 데 그 떠돌이 정신에 날이 서게 해주십시오.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2024. 2. 1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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