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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연대
마가복음 2:1~12
주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계시는 집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희망은 멀고 절망이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가 주도하는 힘의 세계 질서에 편승하지 못한 식민지의 변두리 인생, 삶이 죽음보다 못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의 낙오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얻었고, 주님의 손길을 통해 치유 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병약하여 존재감이 없는 인생이지만 사실 그들이야말로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세상의 주인공은 강한 힘을 가진 정치인이나 큰 부자, 공부를 많이 한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의 주인공은 약하고 못난 자입니다. 가정을 보십시오. 한 가정에 누가 아프면 가정의 질서와 삶은 그 아픈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마련입니다. 돈을 벌어오는 믿음직한 아버지가 가정의 중심이 아니고 가부장적 권위를 자랑하는 할아버지도 아니며, 멋을 잘 부리는 언니나 오빠도 아닙니다. 장애를 갖고 있거나 몸이 아픈 가족을 중심으로 가정의 모든 일이 전개됩니다. 나라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데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 아무리 애써도 헤어나지 못하는 질병과 가난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세 56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발생하였습니다. 법인세와 소득세 등 부자들이 내야 할 세금이 덜 걷혔는데도 정부는 계속 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 버겁게 하는 결과에 이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주인공을 부자 중심으로 설정하면 나라에 망조가 듭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빠르게 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부자를 위한 정책보다 서민을 위한 정책을 활성화하여야 합니다. 부자가 흥해야 서민도 낙전 효과를 보는 게 아니라 서민이 생존하여야 부자도 삽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없어 답답합니다.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인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 예산을 삭감하고, 기초수급자 거주비와 지역화폐, 청소년 사업,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일은 아찔합니다. 권력은 약한 자를 위하여 행사되어야 하고, 물질적 풍요는 가난한 자를 위하여 사용될 때 가장 고귀한 가치를 드러내는 법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우선하는 원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입니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하여 관심과 애정을 유지하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무너질 때가 곧 종말입니다(창 19장).
“무리 때문에 예수께로 데리고 갈 수 없어서, 예수가 계신 곳 위의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중풍병 환자가 누워 있는 자리를 달아 내렸다.”(2:4)
예수님께서 머무는 집에 사람들이 용신할 수 없을 정도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친구는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에게 보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의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5).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연대와 우정이 사람을 살렸습니다.
주님, 우정이 없었다면 주님의 능력을 보지 못할뻔했습니다. 친구들이 지붕을 파괴하는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생명의 존엄성을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우정과 용기를 제게도 주십시오.
2024. 2. 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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