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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비밀번호
마가복음 4:1~12
우리가 어렸을 때는 딱히 놀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자치기, 말뚝박기, 오징어게임, 비석 치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깡통 차기, 술래잡기 등 몇 가지 되지 않았지만 동네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하긴 요즘처럼 세련된 놀잇감은 아니더라도 지천이 다 놀이터이고 놀잇감이었습니다. 으스름해지는 저녁이 되어 집에서 불러도 놀이에 팔려 동무들과 헤어지기를 아쉬워했습니다. 그 시절의 놀이 가운데에 숨바꼭질이 있습니다. 술래가 된 아이가 벽을 향하여 눈을 감고 숫자를 하나에서 열까지 세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헛간이나 문 뒤에나 어떤 은폐물에 몸을 숨깁니다. 숫자를 다 센 술래가 ‘찾는다’고 큰 소리로 알립니다. 그리고 숨어있는 아이들을 찾아내는 놀이입니다. 너무 쉬운데 숨었다가 술래에게 발각된 아이는 멋쩍어하며 다음에는 술래가 찾지 못할 데를 생각하곤 합니다. 아주 은밀한 곳에 숨어있어서 술래가 찾지 못할 때 술래는 ‘못 찾겠다. 꾀꼬리’하면 숨어있던 아이가 득의한 웃음을 지으며 나옵니다. 술래에게 들킨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술래를 정하고 놀이는 반복됩니다. 가히 국민 놀이라 할 만합니다. 그때 불렀던 노래가 기억납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 카락 보일라
꼼꼭 숨어라 어디 어디 숨었나”
사람이 타락한 후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숨바꼭질이 있었습니다. 술래는 하나님이었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 찾다 찾다 못 찾은(?) 하나님이 소리쳤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우리식대로 했다면 ‘못 찾겠다. 꾀꼬리’했으면 인류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포기하실 분이 아니셨던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담이 숨은 채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숨었습니다” 숨죽여 숨어있는 이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 비밀이란 없는 법, 숨어있으면서 자기 위치를 발설하는 게 차라리 정직합니다. 다 알고 계시면서도 모른 척하는 하나님이나, 숨어있으면서 ‘저 여기 있습니다’는 아담이나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4:11~1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쉽다고 해서 아무나 이해하는 허섭스레기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풀린 자물쇠입니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려면 몇 개의 비밀번호를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집 현관문 비밀번호, 은행 계좌 비밀번호, 이메일 비밀번호, 휴대폰 비밀번호 등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믿음의 세계도 그렇습니다. 비밀이란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말합니다. 보물 상자를 갖고 있더라도 채워진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모르면 허사입니다. 믿음은 비밀번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그것을 기꺼이 알려주십니다.
주님,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을 믿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이가 알 수 없는 신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믿음의 길을 오롯이 걸을 담력도 허락하여 주십시오.
2024. 2. 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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