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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귀에 경 읽기
마가복음 4:13~25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하면 답답합니다. 말귀란 남이 하는 말의 뜻을 알아듣는 총기이며 말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묻는 말에 전혀 엉뚱한 대답 하는 경우를 동문서답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인 세상에서 건강한 지성과 상식을 갖춘 시민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상황 판단에 더디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고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는 지도자는 너그러운 아량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술에 취한 운전기사에게 자동차의 운전대를 맡긴 승객처럼 좌불안석입니다. 그것은 가정과 사회, 국가의 경우 동일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가정의 경우에는 내면의 변화 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사회는 제도적으로 고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주권재민 정신이 살아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역사적 과제와 민족적 의제는 한반도 어디에 살아도 공공의 혜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데 있습니다. 증오와 분쟁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평화의 마당을 펼치고 넓히는 일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족 등 허술한 사회 안전망의 피해자를 따뜻하게 보듬고 사회적 약자의 작은 소리가 큰 울림이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격차를 좁히는 일은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지도자는 부자의 부를 증대하면 가난한 자에게 낙전 효과가 있다고 설레발을 치고, 메가시티인 서울에 살아야 행복하다며 서울 인근 도시를 편입하려고 수작을 부립니다. 심각해진 기후 위기가 탈핵을 지향하라고 부추기는데도 핵발전 비중을 확대하고 친환경 에너지는 퇴보시키고 있습니다.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염려도 없고 시민을 섬기는 정치 철학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총기는 없고 깨달음도 더디고 지성은 바닥입니다.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고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받는 사람의 반응을 네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은 말씀을 받지만 믿음에 이르지 못하여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기 일 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힘과 욕망이 주도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보편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밀’(1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좋은 땅’은 말씀을 듣고 믿음화에 성공하여 풍성한 결실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수성이 주님의 일꾼들에 의하여 세속사회에 보편화되는 일이야말로 복음의 급진성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들을 귀’(23)를 주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재차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4:24~25)
주님, 복음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음을 믿습니다. 복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음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세상에 펴는 일에 성과가 생기도록 역사하여 주십시오.
2024. 2. 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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