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오늘의 양식
마가복음 5:35~43
나는 워낙 겁이 많아서 롤러코스터 같은 무섭고 짜릿한 놀이기구를 타지 못합니다. 관광객이 경치를 보고 즐기기 편하도록 만든, 비교적 안전한 관람차조차도 높이 올라가면 무섭습니다. 그런 나로서는 줄 하나를 의지하고 수천 길 높이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아찔한 긴박감을 주는 번지점프 같은 스포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자극적인 쾌감보다 은은한 즐거움이 좋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혈루증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므로 치유 받은 도상의 경험을 통해서 희망을 확신하였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더 믿음이 갔습니다. ‘아, 이 선생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그동안 어느 의사도 고치지 못한 여인의 12년 된 혈루증을 고치시는 분이라면 내 딸의 깊은 병도 단숨에 낫게 하실 것이다. 내가 딸을 구원할 은인을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일로 길에서 바쁜 걸음을 멈춘 일에 조바심이 없지 않았으나 도리어 그 일을 통하여 기대와 희망은 더 커졌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고 빨리 길을 서둘기를 기다렸습니다. 열두 살 된 딸이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고 자리에서 빨리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은 날아갈 듯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직 주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야이로는 자신의 집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들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5:35)
야이로의 솟구치던 희망은 순식간에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야이로는 마치 자기 심장이 멎는 듯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도착하실 때까지만 딸이 살아있으면 반드시 살 것이라는 희망은 순식간에 날아갔습니다. 아무리 주님이라 하셔도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다는 것이 야이로의 생각이었습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희망을 가졌는데 어찌 인생이 이리 야속하단 말인가, 야이로는 망연자실 탄식하며 절망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5:36)
예수님은 딸의 부음을 야이로에게 전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셨습니다.(36) 그런데 주님은 절망의 부음을 무시하십니다. 이는 희망을 절망의 언어로 잘라내는 일을 일상화하는 이들에 대한 견책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희망을 삶의 언어로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주님의 일입니다. 아울러 이 말씀의 맥락은 믿음이 없는 제자들(4:40)에게 믿음을 촉구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5:43)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죽음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 번의 기적이 영원을 살게 하기보다 매일의 섭취가 그날그날을 살게 합니다. 오늘을 건강하게 살려면 오늘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영원에 잇댄 삶을 사는 이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먹지 않으면 파리해집니다.
주님, 한 번의 은총으로 영원을 살 수 있더라도 하루하루 일용할 양식을 취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신앙을 삶으로 번역하며 신앙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2024. 2. 22 (목)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