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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보는 눈
마가복음 6:1~13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입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부모들이 살던 곳이고 예수님도 갓난아기 때 이집트 피난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줄곧 보냈습니다. 지리적으로 익숙할 뿐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서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잘 아는 사이라는 점이 놀라운 은총의 경험을 제한하고 방해할 수 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깜짝 놀랐습니다. 범상치 않은 지혜에 놀랐고, 그 능력의 위대함에 소스라쳤습니다. 이 정도면 마을의 경사로 알아 예수님을 모시고 경축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할 법한데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닌가?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6:3)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가 가관입니다. 마리아의 아들, 목수,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 자신들과 함께 있는 누이들을 열거하며 예수님의 인품과 가르침과 능력을 폄훼하였습니다. 배척의 이유치고는 너무 유치하고 졸렬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도 늘 있습니다. 나는 어제, 교단 선교부 북한권역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신기하게도 북한을 선교한다는 선교사들의 속내에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가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결사적이고 전투적인 반공주의가 교회를 얼마나 심각하게 잠식하고 있는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증오심으로 하는 선교는 성공할 수도 없지만 성공해도 재앙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결혼하겠다는 억지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 사회 도처에 있습니다. 평화와 정의와 인권 등의 문제를 본질에는 근접하지 않고 주변의 사소한 문제로 진실을 호도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려면 그 명분이 그럴듯해야 하고, 정당한 사회 발전을 역행하려면 공부를 많이 하여야 합니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6:4)
선지자가 고향에서 배척받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안목이 결여된 공동체에서는 백조조차도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주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석가는 네팔 룸비니에서 태어나 인도 바라나시에서 설법했고, 마호메트도 메카에서 태어나 메디나로 갔으며, 공자도 노나라에서는 실각하고 천하를 떠돌며 명성이 쌓였습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존경은 싹트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배경이 다른 사람, 출신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존경하는 일이 함께 자라며 추억을 공유한 사람에 대한 존경보다 훨씬 쉽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고향 사람이라는 한가지 이유로 무조건 지지하거나 혈연과 학연과 종교 등에 얽혀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있습니다. 진실을 보는 눈이 감기면 진리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 저희가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조롱당하는 시대에 진리는 스스로 모습을 감추기 마련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진실을 알아보는 안목을 주십시오.
2024. 2. 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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