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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마음
마가복음 6:45~56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와서, 좀 쉬어라”(6:31)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곳으로 떠나갔다.”(6:32)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6:45)
마가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하신 소소한 일들을 기록하였는데 거기에 제자를 생각하는 주님의 애틋한 마음이 엿보입니다.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고(3:14, 6:7) 돌아온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시며 그 노고를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한적한 곳에 쉬게 하셨고 뒷정리는 자신이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주님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46). 찾아온 사람들을 대면하여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치유하신 주님이 가장 피곤하실 법한데 주님은 제자들을 우선하여 쉬도록 하셨습니다. 축복은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받는 법입니다(히 7:6).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일이 세상 이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질서의 세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주님은 선지자나 제사장보다 월등하십니다. 천사보다도 우월하시며 모세와 여호수아와도 비교 불가하신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다릅니다. 그 나라에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깁니다. 낮은 자일수록 굄을 받습니다. 주님은 전혀 다른 질서의 세상이 존재함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예수의 마음’(빌 2:5)이라고 강조합니다. 마가는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의 질서를 초월하는 주님의 세상이 있음을 이렇게 확증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란, 학문의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어 생각하게 하며 스스로 삶의 모범을 보입니다. 그리고 사명을 깨닫게 하여 그 길을 걷게 합니다.
늙은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였습니다(창 49:10~22). 요셉은 맏아들을 야곱의 오른쪽에 세우고, 에브라임을 왼쪽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오른손을 둘째 아들의 머리에, 왼손을 맏아들에게 엇갈리게 얹고 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손을 교정하려고 하였을 때 야곱이 말했습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므낫세가 한 겨레를 이루고 크게 되겠지만, 그 아우가 형보다 더 크게 되고, 아우의 자손에게서 여러 겨레가 갈라져 나올 것이다.”
야곱은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습니다. 세상 질서란 우월한 지위와 힘과 물질과 지식의 유무로 정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상식을 초월합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의 주인공으로 어린이를 지목하시며 어린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크다고(마 18:4)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을 사는 일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 18:10)
주님,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가치와 원리를 가지고 세속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 질서와 가치를 따라 살므로 하나님 나라를 부인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2024. 2. 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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