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막9:43 |
---|---|
설교자 : | 아무개 목사 |
참고 : | https://www.stimesus.com/2021/01/%ec%a7%80%ec%98%a5-%eb%b6%84%eb%aa%85%ed%9e%88-%ec%9e%88%ec%8a%b5%eb%8b%88%eb%8b%a4-2/ |
지옥 분명히 있습니다 (2)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ON 01/08/2021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48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4) (없음),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6) (없음),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들어가는 말
지옥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설교는 계시된 성경 66권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가능한 한 그 말씀들을 균형 있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또 그 책에 나오는 여러 주제들을 골고루 전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지옥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마치 그런 말을 사용하면 교양과 상식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매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흐름에 편승하여 지옥이라는 이 중요한 주제를 외면하는 것은 인기에 영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지옥이 성경에 분명히 나오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지옥에 대해서도 설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르칠까요?
마가복음 9장 43-48절 말씀에는 분명히 지옥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범죄의 위험을 경고하시기 위해 과장법을 쓰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손과 발을 찍어버리라고 하신 것은 과장법을 쓰신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범죄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존재하지도 않는 지옥을 문학적인 기법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1장 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의 말씀들은 아주 분명하게 죄를 범한 자들과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불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비유도 아니고 과장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근거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지옥의 실재에 관한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성경적인 입장은 지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신학자들은 끊임없이 지옥에 대해 다른 주장을 펼쳤습니다.
지옥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
어떤 신학자들은 지옥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지옥에 대한 내용은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조성하여 죄를 짓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마치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는 식으로 위협했던 것처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수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런 경고를 단지 우리에게 공포심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은 성경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지옥은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텅 비어 있다는 견해
이런 사람들을 신학적인 용어로 보편구원론자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들은 지옥은 존재하지만 텅 비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므로 결국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할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옥에 보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일시적으로 지옥에 보낸다고 해도 결국 다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지옥에는 결국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주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지옥이 텅 빈다는 주장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옥은 존재하지만 죄인들이 그 곳에서 영원히 고통받지 않고 일시적인 고통 후에 영혼이 멸절된다는 견해
어떤 신학자들은 지옥은 존재하지만 불신자들은 그 곳에서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이 아니고 그 곳에서 영혼이 죽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불 심판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사람들을 멸절시킬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놀랍게도 복음주의 산학사상에서 폭 넓게 존경을 받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도 이런 주장을 폅니다. 그렇다면 왜 일부 신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할까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옥에 대해 비성경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그리스도가 유일한 소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리스도가 유일한 소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영원한 형벌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할까요?
그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런 주장을 펼칩니다. 쉽게 말해서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한 형벌 가운데 처하게 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은 분명히 성경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줍니다.
줄거리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런 주장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라는 것은 분명히 성경적인 주장입니다. 문제는 사랑이 많다는 말에 대한 해석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 많다는 것을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생각합니다. 인자하신 이웃집 할아버지는 언제든지 이웃집 아이들의 행동을 웃음으로 받아줍니다. 잘하든 잘못하든 이웃집 할아버지는 늘 웃으면서 아이들을 대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든 무조건 좋아하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죄악 가운데 있으면 그 분은 분노하십니다. 그 분은 아무 흠도 없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죄악 가운데 행하는 것을 참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의 의로우심이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므로 인간에게 지옥의 형벌을 주실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간과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지만 그 분의 사랑은 그 분의 거룩하심과 배치되지 않습니다. 그 분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분은 너무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죄를 지을 때조차 무조건 나를 용납하시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아니라 내 머리로 제한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으로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받아주는 그런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의 결과로 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하나님일 뿐입니다.
지금부터 수백 년 전만 해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던 18세기에는 주로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것을 극도로 두렵게 생각했습니다. 18세기 사람들이 하나님을 지나치게 무서운 분으로 인식했다면 지금 21세기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생각으로 판단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성경 속의 하나님입니다. 거룩하시고 동시에 한없이 자비로우신 그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 안에는 공의와 사랑이 완전한 조화 가운데 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멸하고 은혜의 손길을 거부한 사람들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멸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이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 “또 왼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로마서 2장 6-8절,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우리가 진정으로 바른 믿음을 갖기 원한다면 내 생각이나 논리가 아니라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지옥의 실재를 반복하여 말씀하실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씀을 보면서 성경이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영원한 형벌에 빠지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지옥의 멸망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멸망을 경고하는 말씀에 바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지옥의 실재에 대해 바르게 반응하는 것입니까?
존 파이퍼는 그의 책에서 우리는 지옥의 진리를 느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옥의 진리를 반드시 느껴야 합니다. 지옥은 존재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끔찍하며 영원히 계속되는 곳이라는 것을 반드시 느껴야 합니다. 너희는 영벌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 25장 46절). 내가 불 못(요한계시록 20장 15절)과 풀무 불(마태복음 13장 42절)을 상징으로 보려고 애쓴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징이 실체에 대한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라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옥이 그다지 힘든 곳은 아님을 말씀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러한 그림들을 선택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형제들이여 우리는 전문 직업인이 아닙니다”
지옥의 형벌을 마음 깊이 느끼지 못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영생의 선물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지옥의 형벌을 마음 깊이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도에 게으른 것은 아마도 이 지옥의 형벌을 마음 깊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옥의 진리를 느껴야 합니다. 단지 지식으로만 알 것이 아니라 지옥이 실재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나와 지옥이 한 걸음 사이였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럴 때 내가 얻은 구원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지옥의 진리를 마음 깊이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도하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면서 그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에 근거하여 지옥의 실재를 마음 깊이 느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얻은 구원의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닫고 아직도 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부지런히 전파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갑니까?
지옥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갑니다(43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잘라 버리라.』(43절)고 말씀하십니다. 두 손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장애인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자기의 생명이 다 끝날 때까지 죄를 짓다가 지옥으로 갑니다. 특히 부자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죄짓는 일입니다. 어떤 부자는 재산을 사회에다 환원을 하고 죽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쓸데없는 곳에 주어서 누군가 또 다른 죄를 짓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잠언 30장 7-9절 말씀대로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자기 죄를 씻고, 그분을 소유하여 영생을 얻고, 빛 가운데 살다가 부활의 소망을 안고 평안히 잠드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을 때 이 세상에 미련을 가질 것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맨몸으로 왔으니 맨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돈은 그 사람을 지옥으로부터 구출하는 데 아무 일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거래하지 않으시는데 가짜 교회들은 돈으로 거래를 하여 심지어 설교도 돈을 벌기 위해서 같은 설교를 하루에 다섯 번이나 하는 것입니다. 돈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약간 필요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간을 빛으로 인도하십니다(요한1서 1장 5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면 인간은 그 빛을 받을 수 있으며 지옥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든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요한1서 5장 4절).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모든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의지와 양심을 주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되 거저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주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모두가 다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에베소서 2장 8절).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갑니까?
지옥의 무서움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45절).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세상에서 흉악한 죄를 지으면 감옥에 보내어 격리시킵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거짓 종교와 싸움과 쓰레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생존하는 곳에는 이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에 지구를 우주의 모든 행성 가운데서 따로 떨어뜨려 놓아 오염을 막으셨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환경이라 해도 지구에는 낙원이 없습니다. 가짜 종교, 가짜 교회는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사탄입니다. 갈등과 싸움은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쓰레기는 누가 만드는 것입니까? 인간이 더럽기 때문에 쓰레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마저도 더러운 걸레와 같다고 하셨습니다(이사야 64장 6절). 『악으로 달려가는 데 빠른 발』(잠언 6장 18절)이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인간은 발로 죄를 짓습니다(잠언 19장 2절).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그들을 천년왕국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지옥으로 보냅니다. 여러분은 마태복음 5-7장 말씀이 천년왕국의 헌법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천년왕국에 들어갔다면 이 법을 준수할 수 있겠습니까? 준수할 수 없기 때문에 지옥으로 바로 보내시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2장 48절).
사탄은 인간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속이고 또 대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믿기 싫어하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꼬임과 속임수에 빠져서 성경을 믿는 대신 종교행위만 하다가 죽으면 낙원으로 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마치 모슬렘 테러분자들처럼. 그래서 마귀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구원받지 않은 자들은 마귀에게 속임을 당하여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멸망으로 내닫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은 없다.” “지옥은 크게 고통받는 곳이 아니라 견딜 만한 곳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그렇게 무자비하시겠느냐?” “나는 교회에다 많은 헌금을 했는데 나를 지옥에 보내시겠냐?”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죄인들을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다.” 마귀는 이렇게 계속 속이는 것입니다.
지옥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실제적인 장소입니다. 고통받는 장소입니다(누가복음 16장 23-24절). 주님께서 자기 교회를 지상에 허락하신 것은 이 지옥을 설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낙원보다 지옥을 훨씬 많이 설교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옥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하려 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옥에 관한 성경적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구원의 복음도 믿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을 믿지 않게 되면 성경에서 믿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유주의자들은 아무것도 안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입니다. 성경과 관계없이 자기 멋대로 믿는 것입니다. 중들과 어울리고, 수녀들과 어울려 절에도 가고 성당에도 가서 서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석가모니 탄생일을 기념하며 사이좋게 놀고 있습니다. 지옥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현대주의자들이 지금 한국 기독교계를 주도하며, 그들이 성경을 변개시켜 팔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지옥의 실체를 알고 있는 우리까지도 지옥을 사소한 곳으로 여기게 된다면 많은 구원받지 않은 혼들이 단 한 번의 경고도 듣지 못한 채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옥에 대하여 몇 번이나 이야기했습니까?
지옥의 교리란 형벌은 지은 죄에 알맞게 내려진다는 전제 위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거부했을 때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그런 인간들에게 주시기를 영원히 거부하십니다. 영원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순간을 위해서 영원을 불살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걷어차 버립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던져 버렸더니 주님께서도 주님의 생명 안에서 그들을 내쫓아 버리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갑니까?
지옥 불감증 중증환자들입니다(47-48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세상이 자기가 살기에 너무 좋은 곳이고 즐거운 곳이고 시간 가는 것이 아쉽다면 그 사람에게는 이곳이 낙원입니다. 특히 땀 흘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 재벌 2세들, 큰손들, 사채와 고리로 돈 번 사람들, 골프 치며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땀 흘리지 않고 한몫 잡은 자들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 때문에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얼마만큼 어려우면 그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지옥은 성경에서 지옥(hell), 끝없이 깊은 구렁(bottomless pit 혹은 abyss), 타타루스(tartarus), 불 못(gehenna) 4가지로 구분 짓고 있습니다. 지옥은 영어로 헬(hell), 히브리어로 스올(sheol), 헬라어로 하데스(hades)라고 하는데 구원받지 않은 자가 죽어서 가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 말씀에서는 “땅의 심장”이라고 했습니다. 땅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후에 이 지하층으로 내려가셨습니다(에베소서 4장 7-9절). 시편 16장 10절 말씀은 예수님의 몸이 지옥에 있지 않을 것이며 썩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도행전 2장 27절). 주님은 지옥의 열쇠를 가지시고 낙원의 문을 열어서 구약 성도들을 천상의 낙원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끝없이 깊은 구렁은 마귀들을 불 못에 던져질 때까지 천 년간 가두어 두는 마귀들의 감옥입니다(요한계시록 9장 1-21절, 20장 1-3절, 7-8절). 이곳을 아바돈이라고도 하고 아폴루온이라고도 하는데 멸망을 뜻합니다(욥기 26장 6절, 시편 88편 11절, 잠언 15장 11절, 27장 20절, 28장 22절, 31장 12절, 마태복음 7장 3절, 로마서 9장 22절, 빌립보서 3장 19절, 베드로후서 2장 1절, 3장 16절). 이곳은 지옥보다 더 깊은 곳으로 요한계시록 9장 3절 말씀에서 무저갱의 왕을 아바돈(히브리어), 또는 헬라어로 아폴루온이라고 했습니다. 끝이 없는 구덩이인데 누가복음 8장 31절 말씀에서 마귀들이 주님께 그곳에 보내지 말아달라고 간구하면서 자기들을 오히려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타타루스는 또 다른 지옥입니다. 끝없이 깊은 구렁과 비슷한데 범죄 한 천사들의 감옥입니다(베드로후서 2장 4절, 유 6절). 거기 들어간 천사들은 사탄의 천사들이 아닙니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그들의 죄 때문에 노아의 홍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범죄 한 천사들은 백 보좌 심판 때까지 갇혀 있게 됩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베드로후서 2장 4-5절).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을 때 이곳에는 들르지 않으셨습니다.
게헨나는 불 못입니다. 마지막 지옥으로 토펫이라고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 말씀에서 지옥은 사람을 위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를 위해서 지었다고 했는데 이곳이 바로 게헨나입니다(이사야 30장 33절). 이 불 못은 지금 비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대해 지상에서의 모형으로 힌놈의 골짜기(예루살렘의 쓰레기 소각장)를 제시하셨습니다. 이 불 못에 맨 먼저 들어갈 대상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입니다(요한계시록 19장 20절). 기적으로 돈 버는 사람들, 거짓 선지자들이 우리나라에 제일 많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천년왕국 후에 들어갑니다(요한계시록 20장 7?10절). 백 보좌 심판 후에 타타루스에 갇혀 있던 타락한 천사들과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 성경을 고친 자들, 끝까지 복음을 거절한 자들도 모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마가복음 8장 36절)고 말씀하시며 또한 인생은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야고보서 4장 14절).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장 24-25).
세상에서 성취하려고 자신의 짧은 인생을 바치느니 하나님께 드려서 지옥의 무서움을 설교하는 일이 얼마나 값있는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은 것이 너무 잘한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디모데전서 2장 4절). 성도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도 지옥에 가서는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천국에 입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청빙하려고 후보자들을 초청하여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했는데, 첫 번째 온 목사는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하나님을 (시편 9장 17절) 말씀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교회 심의위원회 회장이 그의 설교를 듣고서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몇 주일 후에 또 한 명의 담임 목사 후보자가 와서 똑같은 말씀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심의위원회 회장이 이번에는 그 사람이 좋으니 그를 담임 목사로 청빙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심의위원 중 한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회장에게 “둘 다 똑같은 성경 구절로 설교를 했는데 왜 두 번째 사람을 선택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회장은 대답하기를 “뒤에 설교한 목사님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라고 강조할 때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그의 목소리는 제발 지옥에 가지 말라는 당부가 배어 있었으나 첫 번째 설교한 목사님은 지옥을 설교하면서 히죽히죽 웃는 것 같이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목사들이 지옥을 믿지 않기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설교합니다. 어떤 사람은 겁주려고 설교합니다. 어떤 군함에 타고 있던 몇 명의 군인들이 군목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지옥을 믿습니까?” “아니, 난 안 믿어. 왜 지옥을 믿어?” 그러자 그 병사들이 그 군목에게 “전역하십시오. 만일 지옥이 없다면 우리는 군목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목사님이 지옥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믿음의 길로 빠지길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낙원과 지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낙원과 지옥의 실체는 그들의 가상이나 추측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들 자신도 확신하지 못한 채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상이나 추측에 의해 정립된 낙원과 지옥은 모두 성경에서 따온 것뿐입니다. 성경을 제외한 이 세상에 있는 수천만 권의 책에는 낙원과 지옥의 실체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소위 경전이라는 것들도 무용한 책들이며 신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성경을 제쳐 두고 도대체 사람이 무슨 수로 낙원과 지옥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경만이 인간의 사후의 생과 지옥의 실체와 구원의 필요성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모르면 낙원과 지옥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죽음과 사후의 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생명을 가진 인간이 이 생명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려면 창조주 하나님께로 가서 그분에게 배워야 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새들과 짐승들도 언어가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목적 없이 만들어진 것이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인반면에 이 진리를 가려서 인간들로 진리를 보지 못하고 거짓 속에 기만당한 생을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저주받은 마귀의 속임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속임수가 종교라는 미명아래 심지어는 기독교의 교회라는 이름하에서 갖가지 형태로 자행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살고있는 현 세대에서 경험하고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가장해 교활한 속임수로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여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인간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라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보내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마태복음 25장 41절). 따라서 인간은 절대로 그곳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인간에게 제시하신 경고입니다.
본문 말씀에 죄 값으로 인간이 가야 할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눈이 범죄하게 하면 그 눈을 뽑고 장애인으로 살다가 지옥에 던짐을 받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이라는 곳은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두렵고 비극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손이 범죄하게 하면 그 손을 잘라버리고 지옥에 들어가지 말고 생명을 얻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또 발이 범죄하게 되면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지옥이 처참하고 견딜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의 형벌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너무 잘 아시기에 이렇게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국의 전도 부흥사인 빌리 선데이 목사님은 말씀하기를 “세상의 천하영광을 다 소유했다가 지옥에 들어가기보다는 차라리 천국의 입석을 택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이라는 곳은 아무리 많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여도 잠깐의 세상의 것으로는 결코 보상될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자에게 지옥 불이 얼마나 뜨거우냐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나무를 한 곳에 모으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석탄을 그곳에 함께 쌓은 후 모든 산유국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석유를 그 위에 부은 후 불을 질러 제일 뜨거울 때 지옥에 있는 사람을 한 명 건져다가 넣으면 얼어 죽을 정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지옥이 무서우면 이런 설명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죄의 끝은 파멸이고 지옥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8-9절까지의 말씀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하였고, 베드로후서 2장 4절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으며 요한계시록 20장15절 말씀에서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고 하셨습니다.
지옥은 활활 타오르는 불 못이 있는 곳입니다. 그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지 주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9-30절 말씀에서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8장 8-9절 말씀에서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 거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지옥은 악한 자들이 처하게 될 심판의 장소로서 영원한 형벌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음부”, “스올” 등으로 묘사되었고 헬라어로는 “게엔나”라고 합니다. 게엔나는 히브리어 “게 힌놈”에서 나온 말로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한 골짜기로 왕정시대에 종교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이 어린아이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던 장소였습니다. 선지자들은 이러한 행위를 신랄하게 비난하였을 뿐 아니라 “힌놈 골짜기”가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악한 자의 심판의 장소로,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인식되었으며 그 형벌의 방법으로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지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후에 잘못된 신앙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스라엘은 힌놈의 골짜기에 쓰레기를 버리게 되었고 그 쓰레기를 태우기 위하여 그곳에 불을 지펴 언제나 쓰레기 타는 연기와 악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힌놈의 골짜기는 저주와, 더러움과 악취가 가득한 골짜기로 지옥을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 값으로 영원히 죽어야 하고 멸망 받아야 할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떠나 사람이 되셔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속죄의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이로서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사죄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시편 32편 5절 말씀에서는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마태복음 1장21절 말씀에서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히브리서 8장 12절 말씀에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시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죄 용서의 길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사죄와 구원의 은총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명한 개혁자인 루터가 죄 사함의 놀라운 은혜를 간증했을 때 같이 있던 수도사 한 사람이 루터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당신은 정말 죄사함 받은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에 루터가 느낌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느낌이 없으면서 어떻게 죄사함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이때 루터는 성경을 들어 보이면서 친구 수도사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느낌이 아니라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분명하신 약속이 있기에 우리의 사죄와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17절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사죄의 기쁨과 구원의 확신 속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입니까? 오늘날 교회는 설교가 대부분 목회자들이 자기 생각, 자신의 견해, 자신의 체험 등을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사실 설교가 아니라 소음, 잡담, 잡소리에 불과한 쓸데없는 말들이며, 영혼에 큰 해를 주는 독약입니다. 특히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들의 죄가 어떤 죄이겠습니까?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과연 복음은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요? 복음에 대해서 어떻게 설교를 할 것인가요?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를 죄인들에게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왜 지옥을 설교하지 않습니까? 지옥을 제대로 설교하는 목회자도 거의 없지만, 지옥에 대해서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목회자가 대부분입니다. 이제는 교회에서 지옥이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서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지옥에 대해서 강단에서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이 아니라는 결론이 납니다.
왜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교인들이 지옥을 알지 못하고 지옥에 대해서 설교를 못 듣고 지옥을 모르면 그들의 신앙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옥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가 지옥에 가야 할 만큼의 무섭고 큰 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 자신의 성공, 자신의 성취를 위해서 사는 것이 지옥에 가야 할 만큼 무섭고 큰 죄라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 지옥의 의미입니다.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교회?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 지옥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교인? 이들이 과연 기독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이들은 가짜입니다. 거짓된 교회이며, 목회자들이며, 교인들입니다.
지옥은 엄연한 실제의 장소입니다. 가상세계가 아니다. 전설이나, 판타지가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가야 하는 곳입니다.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오늘날의 교회는 그만큼 인간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피상적이고,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사탕과자나 들려주는 목회자들을 최고로 여깁니다. (거짓 위로, 거짓 소망, 인본주의적 허망한 꿈과 비전, 개그, 성령 은사주의, 세상의 부와 영광, 성공, 승리, 긍정주의 등)
지옥은 듣기 거북하고 분위기를 깨는 주제라고 여깁니다. 지옥은 무식하고, 천한 사람들이나 믿는 것으로 압니다. 교양 있고, 부유하고 점잖고, 지적인 사람들에게는 지옥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지옥을 경고했습니다. 지옥은 분명한 장소와 실제의 장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지옥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자신들의 세속적 환상과 꿈을 따르는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교회가 되어 사람들의 영혼을 여전히 지옥에 갇히게 하는 곳입니다.
성경과 신학을 제대로 알고 배웠다면 결코 지옥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고, 설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을 설교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고도 주의 충성된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지옥 설교 자주 해야 합니다. 양들을 깨우지 못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책임을 묻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실 것입니다. 지옥 분명히 있습니다. 이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달으면서 살아가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