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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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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세상을 살려면
마가복음 8:14~26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 한낮에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다녀야 할 사람이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다닙니다. 매국노가 애국자인 양하고, 거짓말과 왜곡을 일상으로 하던 자가 학생들 앞에서 정직과 성실을 강연합니다. 남을 속여 돈을 번 이들이 인생 성공자인 양 거들먹거립니다. 부정한 A 학점이 정직한 B 학점을 조롱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강도를 잡으라는 검찰이 강도보다 나쁜 놈인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인술을 베푸는 어진 의사의 이면에 도사린 그들만의 음습한 욕망도 보았습니다. 죄인의 구령을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가 죄의 온상이 되고, 목사가 죄인보다 더 악질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쁜 놈이 성공하고 착한 이가 실패하는 세상을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가 버겁습니다. 무엇엔가 중독이라도 되지 않으면 견디어 내기 힘든 현실이 아프고 슬픕니다. 자기 파괴에 국한하는 마약중독이 사회 파괴와 역사 왜곡에 이르는 정치·권력중독보다 차라리 가벼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비판하는 남의 잘못이 내게도 고스란히, 아니 더 농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절망의 가속화를 막기가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는 모순이라고 생각하기에 인간의 나약함과 죄성의 올가미가 너무 집요합니다. 절망은 끝이 없습니다.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8:17~18)
배 안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주님의 공동체에 빵이 하나뿐이었는데 주님이 느닷없이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15) 하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빵을 준비하지 못한 소홀함에 대한 지적으로 이해하였습니다(16). 주님의 질책에는 이미 두 차례나 놀라운 기적을 보고서도 엉뚱한 걱정을 하는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이들이 종교의 우두머리가 되면 종교는 사탄의 놀잇감이 됩니다. 깨달음에 무지한 이가 정치인이 되면 사회는 퇴조하고 약자 돌봄은 중단됩니다.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보려면 거꾸로 보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이 성공하고 착한 사람이 멸시받는 시대에서 긍정과 창조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부정과 파괴적 성찰이 우선 필요합니다. 왜곡된 가치를 살아온 선생의 가르침은 부정해야 하고 가면을 쓴 권력자의 달콤한 꾀임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 거꾸로 된 삶이 좋다면 권력자의 말을 믿고, 기레기가 전하는 뉴스를 신뢰하고, 갈지자를 걷는 세상 질서에 딴지를 걸지 않으면 됩니다. 개돼지처럼 취급받아도 참으면 그만입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8:21)
주님은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섭취한 일로 ‘들어오는 것 보다 나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시며 깨달음을 촉구하신 바 있는데(7:18) 반복하여 깨달음을 촉구하십니다. 이 시대의 우리를 향하여서도 묻습니다. 생각하는 시민 없이는 좋은 세상이 오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 없이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 깨달음이 더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작은 깨달음이라도 실천하는 마음가짐으로 살겠습니다. 거꾸로 가는 세상을 부정하므로 바른 사회가 구현되고, 교회를 부정하므로 하나님 나라 긍정에 이르게 하옵소서.
2024. 3. 2(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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