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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마가복음 8:27~9:1
세상 모든 일에는 과정과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를 모르는 아이에게 ‘하나 곱하기 하나’를 가르칠 수 없고,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기에게 달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천천히 배우고 하나씩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디더라도 기다려 주는 속 깊고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속성을 성공과 승리의 관건이라고 하지만, 대기만성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완성된 인격으로 이 땅에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도 갓난아기로 오셔서 30년간 준비의 삶을 사셨습니다. 삶에는 지난한 과정과 따라야 할 질서가 있습니다. 더디더라도 기다려 주고 머뭇거리더라도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질서와 과정을 무시하면 따뜻한 정이 흐르는 사람이 아니라 냉혹한 괴물이 됩니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선서에 기초한 ‘제네바 선언’의 일부인데 의사들이 그 직을 수행할 때 이를 선서합니다. 약사들이 하는 디오스코리데스 선서, 간호사들의 ‘나이팅게일 선서’도 생명에 대한 진실과 성실한 자세를 무겁게 다룹니다. 하지만 생명 존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가 인술을 행사하면 그것은 돈벌이 수단에 불과합니다. 검사들도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르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 다짐한다’고 선서합니다. 하지만 인권과 정의를 바르게 배우지 못하고 검사가 되면 깡패보다 더 나쁜 악당이 됩니다. 목사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은근히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8:27)
제자들은 저잣거리에서 들은 대로 ‘세례자 요한, 엘리야, 에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잠잠코 들으시던 주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8:29)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8:29)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같은 사실을 기록하는 마태는 좀 더 상세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마 16:16) 이에 주님은 엄중히 경고하시며, 자신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0). 그리고 그때부터(마 16:21)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육신의 비밀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8:31)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후에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밝히시는 주님에게서 인류 구속의 과정과 순서를 읽습니다. 조급증과 경거망동은 대사를 망칩니다. 나를 돌아봅니다.
주님, 빨리 이루어지는 것일수록 가볍지 않은 것이 없고 더디 이루어지는 것일수록 무겁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천천히 살겠습니다.
2024. 3. 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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