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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낭비
마가복음 14:1~11
영화 <바베트의 만찬>(1987, 감독 가브리엘 엑설, 원작 이자크 디녜선)은 ‘아름다운 낭비’도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프랑스 혁명기의 파리는 공포의 도가니였습니다. 혁명 정신을 잇는다는 이유로 당통과 마리와 로베스피에르 등 혁명 세력은 수십만의 무고한 시민을 기요틴에 세웠습니다. 절대왕정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은 무너졌으나 혁명의 정신이자 인류의 희망인 자유, 평등, 박애는 여전히 먼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도리어 절대왕정 시대보다 살아내기가 더 버거웠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의 등장과 왕정복고, 보불전쟁과 공화정 수립 등 정치사적 격변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삶은 피폐해졌고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 무렵(1871) 파리에서 온 바베트라는 여인이 덴마크의 외딴 해안 마을에 숨어들었습니다. 마을의 예배당에는 마르티나와 필리파 늙은 자매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면서 자신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들을 보살폈습니다. 이런 일은 자매의 아버지인 존경받는 목사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젊은 날 자매는 아름답고 멋진 삶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을 따라 침침한 분위기가 감도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청교도적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베트는 오래전 필리파를 가르쳤던 오페라 가수의 추천장 하나를 들고 자매를 찾았습니다. 자매들은 몹시 지쳐있고 불안해하는 바베트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하녀로 살겠다는 바베트의 간청에 비록 옹색한 살림이지만 함께 살기로 합니다. 바베트는 자매를 도와 봉사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을 분위기는 점차 냉담해지고 이웃과 불화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바베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래전에 사두었던 1만 프랑(약 220억)의 복권이 당첨된 것입니다. 자매는 우울한 바닷가 생활을 정리하고 바베트가 파리로 돌아갈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바베트는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여 목사님의 탄생 백 주년 만찬을 준비하여 마을주민을 초청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파리에 가서 고급 포도주와 진귀한 음식 재료를 구해옵니다. 검소한 식생활을 미덕으로 여겨온 자매는 자신들이 추구해 온 삶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바베트가 준비한 음식은 먹되 음식에 관심을 두거나 평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침내 만찬 날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젊은 날 마르티나를 사랑했던 로렌스 장군도 참석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약속한 대로 음식평을 자제하지만 로렌스 장군은 연신 음식에 감탄을 터트리고 극찬하며 자신이 경험한 파리 최고의 요리사 이야기도 합니다. 식사가 계속되면서 사람들은 그동안의 위선과 질투를 실토하며 그동안 응어리졌던 마음을 풀고 화해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화해하며 귀가한 후 바베트는 자매 앞에 자신이 로렌스 장군이 말한 파리 최고의 요리사였음과 만찬을 위해 복권 당첨금을 다 사용하였다고 말합니다.
<바베트의 만찬>은 값진 향유를 모두 주께 바친 여인의 다른 버전입니다. 낭비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사랑과 거기에 담긴 진실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하기까지 사랑을 낭비하셨습니다.
주님, 검소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는데 요즘은 소비가 칭송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자기 몸을 아낌없이 버리신 주님을 우러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주십시오.
2024. 3. 2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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