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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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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
마가복음 14:12~21
요즘이야 수도가 일상화되어 그런 경우가 드뭅니다만 내가 어렸을 때는 집안일을 거드는 일 가운데 하나가 언덕 아래에 있는 동네 우물에서 물지게로 물을 길어다 물독을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 일을 하였습니다. 초롱에 담긴 물은 길을 걸으면서 생긴 출렁거림으로 옷을 젖게 하였지만 그렇게 길어온 물로 우리 집에서는 밥도 짓고 세수도 하고 청소도 하였습니다.
“너희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그 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은 자리를 깔아 놓은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줄 것이니, 너희는 거기에다 준비를 하여라.”(14:10~12)
암호 같은 말씀입니다. 며칠 전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바(11:2) 있습니다. 주님은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왔습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만나게 될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이 궁금합니다. 그 사람의 신분은 종으로 보입니다. 그가 들어가는 집이 유월절 만찬 장소입니다. 제자들은 다짜고짜 ‘선생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사랑방이 어디인가?’ 물으면 됐습니다. 이미 집주인은 다 알고 큰 다락방에 자리를 깔아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런 준비를 하셨는지 오리무중입니다. 이 말씀을 하셔서 유월절 만찬자리를 마련하신 주님이나 물동이를 멘 사람이나 집주인이나 제자들이나 모두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인 듯 합니다. 마치 희곡을 잘 숙지하여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잘 다듬어진 연극처럼 보입니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에칭 <선한 사라마리아 사람>(1633)입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은 강도 만나 심한 상처 입은 자를 수습하여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까지 온 사마리아인이지만 주변 정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며 강도 만난 사람의 간호를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부상당한 사람을 하인들이 부축하여 내리고 있고, 창에서 이를 물끄러미 보는 여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백미(?)는 화면 앞에 그려진 개입니다. 개는 항문에 한껏 힘을 주며 볼일(?)을 보는 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에 똥 누는 개라니 더럽고 불쾌합니다. 모름지기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통하여 당시 유대인들의 교만과 위선을 이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에 똥칠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고소해 하였으리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납니다. 배경으로 처리된 뒷면 우물에서는 여인이 물을 긷고 닭은 모이를 쪼고 하늘에는 새가 납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주님을 맞이하는 일은 평범한 일상에서 할 일이라고 교훈하는 듯합니다. 모든 착한 일이 그렇듯 주님 맞는 일도 물동이를 메듯 하는 일상입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일이 엄청난 은총이면서도 일상이 된 사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일상이 영원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2024. 3. 2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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