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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마가복음 14:32~42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견디는 것이 당신의 의무가 될 것이다. 견뎌야 하는 운명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영국 소설가 샬롯 브론테(1816~1855)가 <제인 에어>에서 한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 마셔야 할 ‘잔’이 있습니다. 남이 대신 마실 수 없는 ‘잔’에 담긴 메타포는 바로 ‘사명’입니다. 사명은 세속적인 임무를 의미하기보다 운명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질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이 진 짐을 사명으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짐은 동일하더라도 짐을 지는 자세가 달라지면 무게감은 달라집니다. 자신이 진 짐이 과연 공적이고 의로우며 선한가를 물어야겠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14:36)
주님은 자신이 마셔야 할 잔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기도에서 주님의 육체적 연약함을 이해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주님은 자신의 삶에 점점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셨습니다. 잠시 후에는 제자의 배반으로 잡힐 것이고, 다른 제자들 역시 뿔뿔이 흩어질 것이며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종교인들에 의하여 죄인이 되어 로마 총독 앞에서 재판받아 십자가 처형에 이를 것입니다. 존경과 모범의 삶을 살았으나 누구도 자신을 편들어 줄 이가 없음을 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환호하며 주님을 맞이하던 군중들은 다 등을 돌렸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떡과 물고기를 받아먹었던 이들도 주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고독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하는 운명의 삶 앞에서 주님은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의 이 기도에서 기도의 참 의미를 배웁니다. 기도란 내 요구를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 삶에 실현하는 일입니다. 기도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고 의지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만일 주님이 자기 의지를 실현코자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였다면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명을 회피하는 일은 죄악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주님의 고민과 고독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받으실 고난의 의미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지는 죄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입니다. 부끄럽지만 나의 삶도 제자들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제껏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고 하였으나 주님께 어떤 유익이 되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도리어 주님께 누를 끼치지 않았나 생각하면 송구합니다. 주님의 제자인 척 흉내만 내면서 교만과 위선을 일삼았습니다. 얼굴 들기가 부끄럽습니다.
주님, 주님은 자신의 잔을 회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독과 고통의 잔을 대면하셨습니다. 제게도 사명이 있다면 회피하지 않는 믿음과 담력 주시기를 빕니다.
2024. 3. 2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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