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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마가복음 14:43~52
배반만큼 슬프고 비통한 일은 없습니다. 근대사에서 힘으로 우리 땅을 강탈하고 역사를 훼손하고 민족정기를 유린하므로 민족에게 큰 아픔을 준 일제보다 더 간악한 존재는 스스로 민족을 배신하여 나라를 팔고 일제에 부역하며 황국신민을 자처하여 선량한 백성과 의로운 독립군을 박해한 친일파들입니다. 그들이 일제보다 우리를 더 비통하게 합니다. 차라리 힘이 약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모자라 나라를 빼앗겼다면 이렇게 슬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대에 비하여 약해서 실패했다면 떳떳하기라고 했을 것입니다. 해방 후, 지난날의 반민족 행위를 철저히 반성하고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용기로 양심고백을 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 진정성을 믿고 민족 미래를 위해 그들을 포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합니다.
꿈같은 이야기는 현실이 되지 않았고 그때 그 친일 부역자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절망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반민족주의자들과 대척하고 있습니다. 넘사벽이던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즈음 불각시처럼 등장한 반민족 외세 의존 세력이 일제 강탈기의 비통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미국 국방부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여도 변변하게 반박하지 못합니다. 독도에 재외공관이 있다고 자살골 넣는 외교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외교부입니까? 행정안전부는 한술 더 떠 3.1운동을 하얼빈의 독립군이 주도하였다고 하니 역사적 진실은커녕 사실관계조차 모르는 이들이 시민의 세금을 축내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체성을 헌신짝 던지듯 하는 이 정부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하는 정부이고 민족자존의 역사적 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큰 자괴감에 빠져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곧 왔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그와 함께 왔다.”(14:43)
주님에게도 배반자가 있었습니다. 가룟사람 유다였습니다. 유다는 제자들 가운데에 셈이 제일 밝았습니다. 그래서 제자 공동체의 회계 일을 보았습니다. 그가 주님을 배반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즉흥적 충동만은 아니었습니다. 전부터 계획한 일이었습니다(14:10~11). 그는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그 사람’이라며 칼과 몽둥이를 든 무리와 신호를 짜는 주도면밀함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불의한 연대를 목격합니다. 주님에게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하였다가 실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스승을 배신하여 부패하고 무능한 기득권 종교에 편승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유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유다의 후예는 지금도 교회 안에 많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14:50)
유다는 주님을 배신했고 다른 제자들은 주님이 가장 외로울 때 도망갔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가장 선한 일을 이루는 방법치고는 너무 슬픕니다.
주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누구를 배반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지난날을 돌아보면 용기가 필요할 때 늘 저는 나약했고 비겁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2024. 3.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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